임수진 소설가
임수진 소설가

문단의 선배와 차 한 잔을 두고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토론 장소가 아니다 보니 흔히 그렇듯 정해진 주제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가 두서없이 오갔다. 그러다가 홍어 이야기가 나왔고 말머리는 곧장 ‘삭힘’에 모아졌다. 오랜 공직생활을 해온 선배는 나이가 든다는 건 숙성의 시간을 거쳐온 홍어처럼 제대로 발효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의 뜻을 이해는 하였지만, 동의하기는 힘들었다. 홍어를 제대로 삭히지 않으면 톡 쏘는 풍미를 느낄 수 없듯이 나이와 숙성은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반론에 선배는 그래서 삭힘의 시간이 더 필요하단 말을 덧붙였다. 잠시 부레가 없는 홍어를 생각했다. 바다 밑바닥에 붙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바다 생물 중에서도 못생긴 편에 속하는 홍어지만 숙성의 단계를 거치면 맛이 깊어져 그야말로 마니아들의 미친듯한 사랑을 받는다. 얼마 전 홍어전을 먹었다. 전이라서 방심했다가 목이 타들어 가고 코끝에 지진이 나는 경험을 했다. 이전 어디서도 먹어 본 적이 없는 정말 독한 맛이었다. 맛에 세게 얻어맞아 정신은 몽롱한데 이상하게 기분은 좋았다.

이처럼 제값을 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감동을 준다. 홍어는 특유의 맛을 내기 위해서는 먹기 좋은 크기로 손질해서 받침대를 깐 항아리에 짚과 홍어를 번갈아 가며 차곡차곡 넣는 게 중요하다. 그 작업이 끝나면 그늘에서 숙성에 들어간다. 선배는 그 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삭힘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직 삭힘의 전 단계인 것 같다. 평상시에는 마음엔 꽃이 피어 있지만, 욕심이 올라오면 순식간에 꽃밭이 짓밟히기 때문이다. 그 조절에 실패해서 매번 지옥과 천당을 오가기에 삭이고 삭히는 일에 100% 공감한다. 과유불급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매사 지나침을 경계하란 뜻이다.

요즘 우리나라뿐 아니라 지구촌은 불의 이미지다. 모든 현상이 욕심과 화에 맥락이 닿아 있는 듯하다. 화나 분노는 삭이고 홍어와 김치는 삭혀야 맛인데 삭이고 삭히는 일과 멀어지면서 서로 으르렁대며 걸리면 물어뜯겠다는 태세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나 이스라엘을 공습한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도 그러하다.

지난 17일에는 가자 지구의 알아흘리 아랍 병원에서 대형 폭발이 있었다. 어린이와 여성 환자와 피란민의 희생이 컸다. 그들이 무슨 죄인가. 중동 최강의 군사력을 갖춘 이스라엘은 어째서 하마스의 공격에 무력했을까? 거기엔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는 오직 자신이라는 삐뚤어진 세계관을 가진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잘못된 믿음이 있다. 최장수 총리로 특수부대 출신인 그를 지지자들은 영웅 대접했다. 과유불급이라고 그는 의회와 인사권을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는 데 활용한 것도 모자라 지금도 욕심을 내려놓지 않고 있다.

바르게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자발적으로 올바르게 사는 일은 더욱 어렵다. 사회 시스템이 올바르지 않은 일을 할 때 더 큰 이득을 가져다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삭이고 삭히는 일에 관심이 없어 그른 짓에도 망설임이 없다. 행동이 발각되어도 상대를 설득하고 납득시키는 기술이 뛰어나다. 필요에 따라 자신이 가진 부와 힘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고 강제력 사용에도 거침이 없다. 문제는 이러한 일이 지구촌은 물론 사회 전반에 비일비재 일어난다는 데 있다. 올바르지 못함의 가장 큰 문제는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하면서도 올바른 듯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모두 플라톤의 『국가』에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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