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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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는 일이 전부 시시하게만 느껴져
식탁보를 접으며 너는 말했다

주말 오후 티브이에선 무엇이든 해내는 아이들의 모습이 방영되고
그때마다 우리는 식탁보를 바꿨다

고단한 한 주였어

너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계단에서 두 번이나 굴렀지만
도와주는 이 없이 무릎을 털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식탁보의 양끝을 맞대었다가 펴기를 반복하고 있다

티브이 속 아이들은
앞니가 빠진 얼굴로 엉성히 자신을 소개한 뒤에
자랄 곳 없이 완벽한 음을 쌓아간다

아이의 빛나는 결말이 그려지는
오늘은 이렇게나 평범한데

저애는 꼭 저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잠자코 아이의 작은 손이 들려주는 연주를 듣다가 밥을 차렸다

식탁보를 접다가
밥을 가장 잘 차리는 사람들같이

시금치볶음을 소분하고
계란 물을 푼 햄을 굽고

우리도 천재였던 적이 있었을까?
반찬을 입에 넣다가 함께 씹은 머리카락을 빼내며
너와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넘어지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기의 천재
반복되는 날들 속에서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지기 천재
그래도 나는 가끔
우리가 서로에게 천재라고 생각해

제 발에 걸려 계단에서 굴러떨어져도
나눌 말 없는 하루에도
함께 반찬을 만들고 식탁보를 접으니까

입안에 음식이 가득 들었다는 핑계로
그다음 말은 하지 않은 채

방안의 연주는 시시할 새 없이 끝났다

티브이에선 다음 이 시간에 방영될 이야기를 알려주고

우리는 늘 다음주를 맞이했다
고작 식탁보를 위해

[감상] 올해 문학동네 신인상 시 부문 당선작 중 한 편이다. 838명이 5538편을 응모했는데, 이정화 씨의 ‘골조의 미래’ 외 4편이 당선되었다. 심사위원은 박연준, 이병률, 이영광 시인이었는데, 이병률 시인의 심사평이 와닿았다. “이번 심사 중에 지어낸 말 하나는 산시(散詩)였다. 산문을 쓰려는 것인지, 산문시를 추구하는 것인지를 모르겠는 모호한 경계. 감정의 오리무중만을 흥건하게 펼쳐놓고는 끝나버리는 시. 이미지를 그러모으지 못하고 문장 한 줄 한 줄을 그대로 허공에 날려버리는 분사하는 듯한 시쓰기가 반복되는 일련의 문학 현상을 나는 그렇게 부르려 한다.” 당선작 중에 내게는 ‘식탁보 접기’가 “이해 가능하고 감식 가능한 범위 안에 놓인” 시였다. “혼밥을 하더라도 예쁜 식탁보를 깔고 예쁜 식기에 소분해서 예쁘게 먹어야 해요.”라고 말한 여자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젊은 시인들의 시를 포기하지 않는 연습”을 비평가로서의 훈련이라고 말했다. 젊은 시인들의 시가 어렵더라도, 다르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것. 읽고 또 읽는 것. 뭔가 보일 때까지. 마지막 연을 변주하자면, “우리는 늘 새 시집을 맞이했다/ 고작 시를 위해” <시인 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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