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섭 대구한의대학교 교학부총장
김문섭 대구한의대학교 교학부총장

정부가 2025학년도부터 의대 입학 인원을 증원하겠다는 발표를 하자 온 사회가 들썩거릴 정도로 이슈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의대가 소재하고 있지 않은 지역의 국회의원들은 출신지역에 의대를 설치해야 한다며 특별법을 발의하는가 하면 삭발까지 하면서 당위성을 강조한다. 어떤 광역지자체장은 자신의 관할 지역에 국립의대가 신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부장관은 자율전공·무전공으로 대학입학 후 의대진학을 제안하였다가 6시간 만에 대통령실로부터 “전혀 검토되지 않았다”는 공개 질책을 받고 다음날 사과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러한 이상 현상은 정치권과 행정기관을 뛰어넘어 나타나고 있다.

대학가에서는 11개 대학이 의대를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교육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의대를 소유하고 있는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의 위상과 경쟁력에 큰 차이가 있다는 말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미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위해 반수나 재수를 선택하면서 이공계 학과의 학생유출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실제로 서울대, 연대, 고려대의 자연계열 중도이탈자 수는 2018년 920명에서 2022년 1388명으로 대폭 증가하였다. 이들 대다수가 의대진학을 목표로 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의대 정원이 증가되면 이공계 학생 이탈의 심화는 명약관화할 것이다. 이 기회에 의사로 전직하고자 직장인까지 뛰어든다고 하니 점입가경이다.

학원가 역시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다. 사교육시장을 대표하는 대치동의 학원가에서는 이미 의대를 전문으로 준비시키는 입시반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특히 남들보다 더 빨리 준비하기 위해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의대전문반을 운영하는 학원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급기야 “초등학교 일 학년이 의대 준비의 적기”라며 광고를 한다고 하니 의대광풍이 불어도 세게 불고 있는 것이 사실로 보인다. 이 초등학생들이 과연 의대와 의사가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추어 선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부모의 욕심이 어린 아이들을 광풍 속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국사회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거의 독보적으로 특별한 사회·경제적 지위와 위상을 보장한다. 이를 상쇄할만한 직업군이 없을 정도로 독점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입시에서도 서울에서 지방까지 전체 의대를 줄 세우고 수능점수 순서대로 의대 합격 후에 유명대학 나머지 학과들에 진학한다고 하니 문제는 문제다. 직업에서 의사를 대체할만한 수준의 지위와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직업군을 만들어 내는 것이 시급하다. 한국사회의 산업계와 직업생태계에서 이공계에서도 의사 수준의 위상과 대우가 만들어져야 한다. 과학자와 연구자들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고 이들이 자기분야에서 자긍심을 가지고 일 할 수 있는 환경구축이 시급하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은 “일자리의 미래”라는 보고서에서 20년 내에 전 세계 7세 어린이 65%는 지금 없는 직업을 가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WEF회장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급격한 사회·경제적 변화는 직업에 대한 개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일례로 의사의 기능 중 상당 부분은 AI가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판독과 암수술 등에서 AI가 활동하고 있다. 이런 추세 속에서 의사의 역할과 지위는 점차 변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학문과 기술의 진화 속에서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할 수 있는 사회적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진정한 미래를 준비시킬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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