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규 문학평론가

뻐꾸기는 두견이과에 속한 여름 철새로 유라시아의 한대와 온대에서 번식하고 아프리카 동남부,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에서 월동을 한 철새로 한국에서는 여름이면 산 숲 속을 오가며 산다. 그런 뻐꾸기는 뻐꾹 뻐꾹 소리를 내며 이산으로 갔다. 또 저산으로 갔다. 떠돌아다닌다.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뻐꾸기 암컷은 붉은머리오목눈이 또는 검은딱새 둥지에 알을 낳는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은 것으로 끝이다. 새끼는 돌아본 척도 하지 않는다. 남의 둥지에서 태어난 새끼는 어느 정도 자라면 둥지를 떠난다. 한 마디로 어미는 남의 둥지에 알만 낳아 놓고 새끼는 나 몰라라 한다. 보통 얌체동물이 아니다.

인간 중에도 뻐꾸기 같은 사람이 없지 않다. 사람이 그런 뻐꾸기 같아선 안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0세기 후반 이후 뻐꾸기 넌 저리 가라 하는 인간 뻐꾸기가 참 많기도 한다. 그것은 보육원 등 아동보호시설이 말해 주고 있다.

과학의 발달로 삶의 행태가 다양화되면서 도시화가 이루어지자 인간 뻐꾸기가 곳곳에서 기승을 부린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지구촌 곳곳이 크게 다르지 않다.

남냐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살다 걸핏하면 이혼 아이는 여자에게 남겨두고 남자는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린다. 여자 또한 보육원 등에 아이를 보내고 사라진다. 그게 뻐꾸기와 다를 바 없다.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 놓듯 인간이라는 동물들이 그렇다.

다시 말해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 알에서 태어난 새끼들이 어떻게 사는지 관심이 없는 것과 남자가 여자 몸에 임신을 시켜놓고 나 몰라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남자가 인간뻐꾸기가 아니고 뭐겠는가? 그 짓 인간과 뻐꾸기뿐만이 아니다. 동물의 세계가 비슷하다. 새끼를 낳고 기르는 건 암컷 몫이다.

개, 소, 말, 돼지, 닭, 뻐꾸기 그것들만 보아도 새끼를 낳고 키우는 것은 모두 암컷의 몫이다. 그중에서도 수놈은 그만두고 암놈도 새끼를 나 몰라라 하는 동물이 뻐꾸기다. 인간도 소수이기는 해도 뻐꾸기 같은 그런 여자들이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이라는 동물에겐 다른 동물에서 볼 수 없는 높은 지능이 있으며 그 지능을 이용 언어와 문자를 사용할 줄 안다. 언어와 문자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공유한다. 그런 인간이 뻐꾸기와 같은 행위를 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태초의 인간, 원시시대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 여자들 몫이었다 하지만 과학문명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그래서는 안 된다. 여자에게 아이를 낳도록 하여 키우게 하고 남자는 난 몰라 그래서는 안 된다. 남자가 자기 자신의 행위로 하여금 생긴 모든 일에 대해선 끝까지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남자가 자기 자신으로 하여금 여자가 아이를 낳는 등 그런 행동에 대한 책임, 끝까지 지는 인간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뻐꾸기 같은 인간, 그런 인간이 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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