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연일 전 포항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배연일 전 포항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수는 9,499,933명이다. 이제 곧 노인 인구 1,000만 시대가 도래한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빠르다. 프랑스는 노인 인구가 7%(고령화 사회)에서 14%(고령사회)에 이르는 데 무려 115년, 미국은 72년, 영국은 47년, 독일은 40년이 걸린 데 비해 우리나라는 불과 17년 만에 고령사회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급속한 고령사회 진입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는데, 치매 발생률도 그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중앙치매센터에 의하면 2023년 우리나라의 치매 환자 수는 998,833.2명으로 유병률이 무려 10.51%에 달한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전국 65세 이상 추정 치매 환자 수는 2020년 약 84만 명, 2021년 약 89만 명, 2022년 약 94만 명, 2023년 약 100만 명으로 매년 5만 명씩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2030년 142만 명, 2040년 226만 명, 2050년에는 315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리고 치매 환자의 성별(2022년 기준)을 보면 여성이 61.7%로 남성 38.3%보다 훨씬 높다.

한편 치매 노인 실태조사(2021년)에 따르면 치매 환자 1인당 연간 관리 비용은 2010년 1,851만 원이었는데 2021년에는 2,112만 원으로 추정된다. 치매 환자 1인당 연간 관리 비용 2,112만 원은 가구당 월평균 소득(464.2만 원)을 이용하여 산출한 연간 가구소득 5,570만 원의 49.5%(2021년 가계동향 조사, 통계청, 2022)를 차지한다. 그리고 2021년 치매 환자에 대한 연간 총국가 치매 관리 비용은 18조 7천억 원으로 GDP의 약 0.9%를 차지한다.

이렇듯 치매 환자 발생률 증가는 개인과 가족의 정신적(精神的)·경제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국가적 부담으로 이어지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치매 용어조차 개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여간 안타깝지 않다.

‘치매(dementia)’의 어원은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 ‘정신이 없어진 것’, 또는 ‘정신이 부재(不在)한 상태’라는 의미가 있다. 또한 ‘치매(癡呆)’의 치(癡)는 ‘어리석을 치’이며 매(呆) 또한 ‘어리석을 매’로, 어리석음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쓰고 있는 ‘치매’는 일본에서 전해진 ‘치매(癡呆)’를 우리 발음으로 읽은 것이다.

하지만 치매의 부정적인 어감(語感) 때문에 일본은 지난 2004년에 치매를 ‘인지증(認知症)’이라는 용어로 바꾸었다. 그리고 대만은 2001년에 실지증(失智症)으로, 홍콩과 중국도 2010년과 2012년에 ‘뇌퇴화증(腦退化症)’으로 개정했다. 미국 역시 2013년 치매를 ‘주요 신경인지장애(major vascular neurocognitive disorders)’로 변경했다.

우리나라도 2000년대 중반부터 치매 용어가 부정적인 인식을 유발하므로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올해 1월에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는 치매 명칭을 개정하고, 치매에 대한 인식 개선을 추진하기 위해 의료계, 돌봄·복지 전문가 및 치매 환자 가족단체 등 10여 명이 참여하는 ‘치매 용어 개정 협의체’ 첫 회의를 개최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연말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치매 용어는 개정이 되지 않고 있다. 치매 환자 수가 내년이면 1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하는데, 치매 용어 하나 바꾸는 게 정말 그렇게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주지(周知)의 사실이듯 우리나라도 이미 부정적 의미가 있는 병명을 바꾼 사례가 있지 않은가. 즉 2011년 ‘정신분열병’을 ‘조현병’, 2014년 ‘간질’을 ‘뇌전증’으로 변경한 게 바로 그 예에 속한다.

 치매 용어를 변경해야 하는 이유는 ‘용어가 이미 부정적 편견이 생겼기 때문에’라는 응답이 58.6%로 가장 높았으며, ‘치매 환자를 비하(卑下)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가 16.5%, ‘용어의 어감이 좋지 않아서’가 13.4%로 나타났다. 이처럼 치매라는 부정적인 어감이 질병에 대한 편견을 유발하고 환자와 가족에게도 불필요한 모멸감을 주므로 하루라도 빨리 용어를 바꾸어야 한다. 왜냐하면, 치매 용어 개정이 치매에 대한 인식 개선은 물론, 치매 친화적 사회 환경 조성에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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