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철 전 KBS 기자·민생경제정책연구소장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선 출마가 사실상 굳어진 2021년 6월 20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첫 영입인사인 이동훈 대변인이 업무 수행한 지 닷새 만에 전격 사퇴했다. 이동훈 대변인은 사퇴 이틀 전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러셔도 될 것 같다”고 답했다. 2시간 뒤 이 대변인은 “입당 문제는 경거망동하지 않고 태산처럼 신중하게 행동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논란이 이어지자 결국 윤 전 총장이 “지금 국민의힘 입당을 거론하는 건 국민에 대한 도리·예의가 아니다”며 직접 수습했다.

언론은 당시 불거진 메시지 혼선이 이유라고 해석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진짜 이유가 밝혀졌다. 이동훈 대변인이 포항 수산업자 김태우로부터 수 백 만원을 호가하는 골프 클럽을 선물 받아 경찰 조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포항 수산업자 스캔들 때문에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홍준표 대구시장(전 당 대표) 등 현 여권의 중진 인사, 박영수 특검 등 여럿이 곤욕을 치렀다. 이동훈 대변인은 현장 기자 시절 검찰과 법원을 주로 취재했으며, <조선일보> 논설위원 출신으로 윤석열 캠프의 1호 공식 영입 인사였다.

원래 나는 대변인의 조건으로 세 가지 금기(禁忌)를 후보에게 친구와 동료들에게 제시했었다. 서울대 출신 피하고, 조중동(조선 중앙 동아) 피하고, 대구경북(TK) 출신 피하라. 내가 금기 3요소를 제시한 것은, 정치든 경제든 모든 대변인은 기본적으로 자신보다 어린 후배 기자들을 상대로 낮은 자세로 일해야만 하며, 선거의 특성상 더 낮은 자세로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위 세 범주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다소 뻣뻣한 느낌이 있어 젊은 취재 기자들이 불편해할 수 있고 언론사 데스크들과도 마찰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내 자신의 오래전 경험도 작용했다. 1998년 지방선거 당시 한 수도권 광역단체장 선거에 출마한 장관의 부인이 내게 상의해 왔다. 중앙지 논설위원 출신의 유능한 언론인을 선거본부 대변인에 앉혔더니 지역 언론사 간부, 취재 기자들과 사사건건 다투어서 조용한 날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부인은 내게 “바꿔야 하느냐 아니면 그냥 가야 하느냐, 정말 큰 고민이예요”라고 애절하게 조언을 구했다. 나는 대답했다. “바꾸면 선거 도우려고 회사에 사표 쓰고 온 선배가 얼마나 서운하게 생각하겠어요? 지역 언론 간부 출신을 1명 더 초치해서 [기획과 중앙지 응대]는 중앙지 출신, [조직과 지역 언론 응대]는 지역 언론 출신으로 역할을 나누시죠. 두 사람 관계는 대외적으로는 대등하게 하되 내부적으로는 중앙지 출신을 우위에 두면 좋지 않을까요?” 언론인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서로 지지 않으려 하며 후배격인 취재 기자들을 가르치려는 습성이 있다. 특히 메이저인 조중동 출신은 여간해서는 1등 신문으로서의 자존심을 굽히려 하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정당 사무처 출신 대변인 또는 부대변인은 충성심도 강하고 정무 감각도 있고 당과 언론 네트워크도 있지만, 말로는 청산유수인데 글로 쓰라면 손도 못 대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다. 그래서 정당 사무처 출신은 비서로는 쓸 만한데 대변인으로는 적임자를 찾기 어렵다. 법조인 출신은 대체로 입이 무겁고 필력도 있는 데다, 글이 대체로 논점도 잘 잡고 언어 구사가 정확해 장점이 많다. 그러나 정무 감각이 둔하고 속도가 느린 점이 아쉽고, 글이 대체로 문어체로 장황하고 어려운 게 단점이다.

그래서 대변인은 언론 출신을 쓰게 되는데, 언론 출신은 필력도 있고 언론 네트워크도 당연히 있고 정무 감각도 조금은 갖추었다. 그러나 대체로 조금 입(때로는 처신)이 가볍다는 평을 받는다. (공교롭게도 입이 가볍고 무거운 것은 공교롭게도 언론사의 위상이나 언론사 안에서 본인의 위상과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언론사 출신은 특히 후배 언론인들에게 사사건건 가르치려 들어 이 때문에 현장에서 충돌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동훈 대변인은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TK 출신으로, 서울대를 졸업한 조선일보 논설위원이었다. 매우 유능하지만, 금기 3요소를 모두 갖춘 언론이었던 것이다.

이 대변인이 물러나면서 소통 창구는 온라인 홍보를 맡던 이상록 대변인으로 일원화됐다. 부대변인을 맡은 최지현 변호사는 기자회견 준비나 언론 네트워크 등 실무는 아직 준비가 덜 돼 있었다. 다행히 최지현 변호사는 법조 가문 출신답게 필력도 뛰어났고, 동생이 KBS 아나운서 출신일 정도로 미모도 특출했다. 동생 덕분에 언론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빨랐고, 언론 네트워크도 수월하게 구축해 냈다. 최지현 부대변인은 바로 며칠 후 윤석열 총장의 대선 출마 선언을 진행하는 등 초기 어수선한 상황에서 언론 창구 역할을 해냈고, 선거 후 인수위를 거쳐 대통령실에서 일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현역 KBS 기자인 김기흥 부대변인이 합류해 힘을 보탰다. 누나도 YTN 앵커로 언론 가문이라 할 수 있겠다. 정무 감각에 입이 무겁고, 장신에 훤칠한 외모까지 갖춘 김기흥 부대변인은 후보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선거 때에는 수행비서와 캠프 수석부대변인으로, 선거 후에는 인수위 공보팀, 윤 대통령 취임 후에는 대통령실 대변인실 선임행정관과 부대변인 등으로 일했다. 김기흥 부대변인은 최근 사직하고 내년 총선에 인천 송도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후배가 정치인으로서도 성공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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