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구 사진작가가 전시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 거장 강운구 작가가 사진집 ‘암각화 또는 사진’을 펴냈다.

이 책은 뮤지엄한미가 지난달 22일 개막해 2024년 3월 17일까지 뮤지엄한미 삼청에서 여는 강운구 초대기획전 ‘암각화 또는 사진’과 연계해 발간한 사진집이다. 전 세계 30여 곳의 암각화를 담은 결과물이다.

아득한 선사시대, 고대인들의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은 어떠했을까. 산과 바다. 그리고 하늘, 끝없이 펼쳐진 초원엔 수많은 초식과 육식 동물이 조화를 이루고 바다엔 이름을 알 수 없는 물고기들이 유영하고 있었을 터이다. 이 광활한 산하대지와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칠레 서쪽 남태평양 이스터섬의 석상 모아이처럼 누군가를 기다렸을까?

중국 신장 본부트에서 암각화를 관찰 하는 강운구 작가 (2019)
고대인의 표현 방식은 암각화가 대표적이다. 다른 방식이 있었겠지만 남아 있는 것은 암각화와 동굴벽화이다. 스페인 북부 피레네산맥 남쪽 알타미라 벽화의 상처 입은 들소 등의 채색화는 숱한 세월이 지났음에도 선명하다. 돌에 새긴 암각화도 세계 곳곳에 산재해 있다. 동물과 자연의 형상을 그리거나 각종 주술적 모형 등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국내에선 울산 반구대 암각화와 포항 칠포리 암각화가 대표적이다. 특히 반구대 암각화엔 고래를 비롯한 바다 생물들의 모형이 가득하다. 그 시대의 생물들을 추측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이 암각화 중 세로로 서 있는 고래에 대해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모두가 보아도 예사로 보았던 것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강 작가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50여 년 동안 중앙아시아와 중국 러시아 몽골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암각화를 촬영했다. 강운구 사진작가와 뮤지엄한미가 그 기록물을 ‘암각화 또는 사진’이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강 작가는 ‘시간 속의 사람을 찾아서’라는 책 서문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중국 신장 본부트에서 암각화를 관찰 하는 강운구 작가 (2020)
“태초에 빛은 있었으나 사진술은 없었다. 이윽고 글자가 고안됐고, 그보다 더 오래전에 그림이 있었다. 고대 사람들이 흙이나 모래, 그리고 나무에 그렸던 그림들은, 그들이 울고 웃던 소리와 탄식과 노래들은 사라졌다. 그 소리들은, 그 그림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고대 사람들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서리는 잡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림은 확실하게 갈무리할 수 있었다. 몇만 년 전부터 동굴 벽화 천정에 그림을 그렸다.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여러 지역 여러 동굴 중에서 우리가 많이 아는 저 알타미라, 라스코 그리고 쇼베 동굴에는 놀라운 그림들이 있다. 쇼베 동굴의 그림은 3만6000여 년 전의 것이고 알타미라와 라스코의 것은 후기 구석기 시대인 기원전 18500~4000년 전 어느 때에 한 천재 또는 천재들이 그린 그림들이다. 빙하기가 끝나고 구석기에서 신석기 시대로 접어들면서 인류는 동굴에서 밖으로 나와 바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단단한 바위는 고대인의 하드디스크이다. 아니, 그보다 내구성이 훨씬 더 좋은 기록 장치이다. 하드디스크가 노천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5000년을 버틸 수 있기나 할까? 세상에 대한 나의 관심은 사람에 대한, 사람이 사는 방법과 그 환경에 관한 것이다. 나는 멀고 낯선 지역들의 여러 현장에 함몰된 채 고대 사람들과 조우했다. 지금까지 몇천 년 동안 나를 기다려 준 고대 사람들에게 무릎 꿇고 큰절을 올렸다. 선사 시대에 각 지역의 천재들이 바위에 저장한 암각화는 그 시대의 사진이다. 나의 이 사진들은 고대의 그들에게 바치는 경의다.”

이 책에는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몽골, 중국 등의 암각화 현장을 찾아 사진을 촬영한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귀중한 기록이 실려 있다. 특히 학술서를 능가하는 해설이 함께 있어서 고대인들의 삶을 찾아가는 위대한 여정이 펼쳐진다. ‘암각화 또는 사진’에는 전체 연작과 함께 사이트별 강운구의 글과 작품 설명이 수록돼 있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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