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천 파리1대학 국제관계사 박사
정상천 파리1대학 국제관계사 박사

요즈음 영화 ‘서울의 봄’이 세간의 화제이다. 12·12 군사 쿠데타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개봉 2주 만에 관람객수 400만을 돌파하여 조만간 1000만 관객 돌파는 시간문제인 것 같다.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소위 신군부 세력들의 권력 찬탈 과정을 실감 나게 그려내었기 때문이다.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시해를 당하고, 당시 최규하 국무총리가 통일주체국민회의의 표결을 거쳐 제10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는 12·12 쿠데타로 신군부가 실세로 등장함에 재임 8개월 만에 축출되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짧은 임기를 지낸 대통령이 되었다. ‘서울의 봄’은 ‘프라하의 봄’, ‘아랍의 봄’처럼 1979년 10·26부터 1980년 5·18 직전까지의 민주화 운동 시기를 말한다.

마오쩌둥 어록 중에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라는 말이 있다. 개발도상국의 많은 나라에서 엘리트집단인 군부가 정권을 잡는 일이 종종 있었다. 태국은 군부 쿠데타가 수시로 일어나서 현재까지 17번의 헌법 개정을 거쳤다. 2021년에는 미얀마의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국가고문이자 외무부 장관이었던 아웅산 수치 여사를 가택연금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권력은 국민들의 투표에서 나오는 것이지 총부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에도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대법원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12·12와 5·18 사건 재판에서 “헌법에 정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폭력에 의하여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라고 판시하였다.

이에 대해 신군부 세력들 중 일부는 아직도 자신들의 쿠데타가 10·26 이후 어수선한 국내 상황과 북한의 재남침 위기, 경제 체제와 사회질서 붕괴 등을 타개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항변하고 있다. 12·12의 직접적인 원인은 당시 정승화 참모총장과 전두환의 하나회 장교들 간의 갈등으로 일어났지만, 결과적으로 1980년 5·17 전국 비상계엄령 선포와 광주 민중항쟁을 총칼로 진압하고, 12·12의 주역인 전두환, 노태우가 각각 11대·12대, 13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 것은 전형적인 군사 쿠데타의 결과이다. 이들은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훈인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爲國獻身 軍人本分)’라는 말을 망각한 것이다. 충성을 다해 나라를 지키라고 했지, 헌법을 유린해서 정권을 잡으라고 하지는 않았다.

1995년 11월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역사바로세우기 공약에 의해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나란히 죄수복을 입은 체 법정에 서서 재판을 받고, 구속수감 되었다. 우리나라 정치사에 대통령이 총탄에 쓰러지고, 그 후의 대통령들이 감옥에 가거나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은 것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여야가 벌이고 있는 극한적인 정치적 대립은 대화와 타협, 양보와 아량의 정치가 실종되고, 권모술수와 지역주의, 당리당략 그리고 적자생존의 정글의 법칙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정권을 잡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없다(all or nothing)‘라는 허망한 생각을 지워버려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많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는 1988년 11월 23일 국민들의 저항과 세상의 비난을 피해 눈 내리는 강원도 백담사에 들어가 2년간 칩거를 하였다. ‘꽃은 열흘 피기 어렵고, 권력은 10년을 가기 어렵다(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아직도 우리나라 헌법은 노태우 대통령 때 만들어진 5공화국 헌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각계각층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다당제 구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정치시스템 개혁도 부재하다. 눈이 펑펑 내리는 백담사에는 정적만이 감돌고 있고, 내년 4월에는 진짜 봄이 오려는가? 목을 내밀어 밖을 바라본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