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자연은 봄 다음 바로 겨울이 오지 않는다. 열음을 맺게 하는 여름이 있고, 열매를 거두는 가을의 기쁨을 누리게 한다. 만물은 물 흐르듯 순환한다. 억지스러움이 없다. 이것이 순리(順理)다. 모든 것에 순서가 있고, 기다림은 헛됨이 아닌 과정이다. 하염없는 소쩍새의 울음과 먹구름 속의 천둥에 한 송이 국화꽃이 피었다고 시인이 노래했듯이 알뜰한 노력과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다. 그저 되는 것은 없다. 씨 뿌려 가꾼 다음 기다림이 순리다.

인간은 종종 땀보다 돈을 먼저 가지려 하고, 설렘보다 희열을 먼저 맛보려 하며 베이스캠프보다 정상을 먼저 정복하고 싶어 안달이다. 노력보다 결과를 먼저 기대하기에 무모해지고, 탐욕스러워지고, 조바심내고, 쉽게 좌절하기도 한다. 안달복달은 순리가 아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랴.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름다운 꽃도 지고 다시 핀다. 인간의 삶도 땀 흘림이 있어야 하고, 기다림이 있어야 보람이 주어진다. 땀 흘림이나 기다림의 방향도 올발라야 한다. 바로 순리다. 순리를 따르면 삶이 편해지고 밝아진다.

카카오스토리에서 일본 마쓰시다 고노스케의 일화 ‘세 가지 은혜’를 읽었다. 마쓰시다 회장은 하늘이 준 세 가지 큰 은혜를 이야기했다. 가난과 신체의 허약, 배우지 못한 것. 세 가지가 은혜라고 했다. 가난했기 때문에 부지런히 일해야 했고, 허약하게 태어난 덕분에 건강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못 배웠기(초등 4년 중퇴)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고 지식을 습득하여 순리대로 무리 없이 성공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고 했다.

어려운 여건을 하늘이 준 시련으로 알고 감사하며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순리대로 역경을 순경으로 바꾼 것이다. 무리하지 않고 순리로 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인 탓에 세계적인 사업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승리에 특별한 모험이나 수단이 없었다고 한다.

우물에서 숭늉 찾기,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쓰기 등 기다림 없이 조급하게 무얼 이루려는 사람들, 급한 성격 탓도 있지만, ‘빨리빨리’가 몸에 익은 탓도 있으리라. 일확천금. 한방에 승부를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탈이다. 한방이 시원스럽고 화끈한 면이 있긴 하지만 좀 늦어도 순리대로 이루어져야 튼튼하고, 아름답고, 정의롭다.

중국 고사에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북산에 사는 우공(愚公)이 높은 산 때문에 불편을 느끼고 산을 옮기기로 했다. 둘레가 700리나 되는 산의 흙을 퍼담아 발해만까지 운반하는 우공을 보고 친구가 그만두라고 권하자 우공이 나는 늙었지만, 자식과 손자가 있어 대를 이어 산을 파내면 언젠가는 산이 평평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옥황상제가 이를 듣고 산을 옮겨 주어 우공의 뜻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다. 끈질긴 근성이 옥황상제의 마음을 움직였다.

우공이산은 순리가 아니다. 옹고집의 집념이다. 쉽게 포기하지 말고 끈질긴 근성으로 노력하라는 교훈이다. 옥황상제가 두 손을 들어버린 억지다. 중국인의 무서운 근성이다. 소수의 사람과 장비로 잔도(棧道)를 놓아가는 것을 보고 우공이산을 생각한 적이 있다. 순리는 아니지만, 기다림과 묵묵히 실천함의 미덕을 말한 것이다.

산을 옮기는 것보다 집을 옮기는 것이 순리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손바닥 뒤집는 변덕도 순리는 아니다. 진득한 기다림이 순리다. 도무지 기다릴 줄 모른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만날 비대위, 혁신위다. 변덕이 죽 끓는다. 갈 사람 가고, 올 사람 오는 것이 자연정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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