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영화평론가·K국제펜문학회 회장

크레센도 (Crescendo) 는 “‘점점 세게’라는 뜻의 음악 용어이다. 헤더 윌크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크레센도’는 2022년도 제16회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실황을 기록한 빼어난 작품이다. 제목만큼이나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동이 점점 세게 느껴졌다. 물론 60년 역사이래 최연소(18세)로 우승한 한국이 낳은 천재 피아니스트 임윤찬(2004~ )을 보는 기쁨이 크다. 하지만 이 영화는 1962년 이래 매 4년 마다 개최되는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의 탄생과 운영에 대하여도 잘 설명하고 있다. 또한 2022년도 지원자 51개국 388명의 피아니스트 중에서 미국 텍사스 주 포트워스에서 개최된 준준결승까지 올라온 30명의 빼어난 피아니스트 한 명 한 명에 대하여 소개받는 재미도 솔솔하다.

1957년 인류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호를 성공적으로 쏘아올린 과학기술 강국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구 소련)은 이듬해 그들이 문화예술에서도 세계 최고임을 자랑하기 위하여 <차이코프스키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개최하였다. 그런데 냉전이 절정이던 이 시기 뜻밖의 우승자는 미국에서 온 23세의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 (Harvy Lavan Cliburn, 1934-2013) 이었고 당시 후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부터 직접 금메달을 수여받았다. 이 놀라운 소식은 미국 전역을 열광케 하였고 카퍼레이드 등의 대환영을 받은 반 클라이번의 영광은 결국 반 클라이번 재단이 설립되어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경연 대회 (Van Clibur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차이코프스키 그리고 반 클라이번 각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의 상금은 공히 10만 달러이고 1932년 시작된 폴란드의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의 상금은 3만 달러이다. 그러나 이들 수상자들의 영광은 상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함이라 할 것이다.

임윤찬

이미 한국은 세계적인 문화강국이다. 12명이 겨룬 준결선 리사이틀에 무려 4명의 한국청년이 선발되었었다. 순수 국내파 영재로서 고등학교 과정을 뛰어넘어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생이던 최연소 연주자 임윤찬이 5년 전 (코로나로 1년 연기됨) 당시 28세의 나이로 우승자이던 미국 유학파 출신인 선우 예권(1989~ )의 뒤를 이어 2회 연속 한국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은 것이다. 임윤찬은 12명이 겨룬 준결승전에서는 프란츠 리스트의 초절 기교 연습곡을 연주하여 이미 심사위원으로부터는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연주였다는 극찬을 받았다. 이마에 흐르는 땀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이어서 20대 후반의 한국 형들 3명을 남겨두고 미국, 러시아 등 다른 나라 연주자들과 6명이 겨룬 결선 마지막 무대에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임윤찬 외 다른 2명도 같은 곡을 연주했는데, 이 곡은 반 클라이번이 1958년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곡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영화 중 임윤찬과 반 클라이번의 연주 장면이 겹쳐져 나오기도 한다. 빼어난 편집이 이 영화의 완성도를 더 높였다. 한국이 낳은 천재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겸손하고도 신중한 언행은 더욱 든든한 모습이다. 그런데 우승자 임윤찬에 이어서 이미 아기를 하나 둔 러시아의 임신부 31세 안나 게뉴세네가 2위를,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로 쵸니가 3위를 차지했다. 전쟁국가인 두 나라의 젊은 예술인들이 한 무대의 시상식장에 선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한편 독일에도 2019년도 극영화 ‘크레센도’라는 작품이 있다. 독일인 지휘자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연주자들을 훈련시켜 오케스트라를 연주한다는 감동적인 영화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전쟁 중인 작금에 이들 양국 연주자들의 단합된 모습도 더욱 소중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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