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영 수필가·고전문학 박사
강지영 수필가·고전문학 박사

창자와 고수가 펼치는 연행, 판소리는 그렇게 규정된다. 심청이 아비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고 제비 다리를 고쳐준 흥부가 복을 받아 부자가 되고 춘향과 이도령이 사랑을 꽃피우는 광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관객들은 울고 웃었다. 그 눈물과 웃음을 통해 관객들은 나라가 제 역할을 못함으로 인해 마주해야 했던 삶의 뭇 애환을 판소리 광대들과 함께 풀어냈다.

판을 중심으로 광대와 관객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판소리 서사 중 <토별가>가 있다. 용왕의 병으로 시작되는 <토별가>는 토끼의 간을 구하러 가는 자라의 여정과 간을 사수하기 위한 모략과 지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이 <토별가> 초입에는 용왕이 의원에게서 토끼 간을 먹어야 병이 낫는다는 말을 듣고 신하들을 불러 모으는 장면이 수록되어 있다. 신하 대부분이 핑계를 대며 육지로 나가기를 꺼리는 가운데 자라가 선뜻 육지로 가겠다고 한다. 그리하여 자라는 육지에서 토끼를 용궁으로 데려오게 되고 이후 자라의 감언이설에 속아 죽을 위기에 이른 것을 알게 된 토끼는 기지를 발휘해 용궁을 탈출한다. 결론은 토끼가 용궁을 벗어난 후의 이야기는 용왕이 토끼의 똥을 먹고 병이 낫거나 자라가 자살하거나 자살한 자라를 위해 용왕이 장례를 치러주는 등으로 나타나는데, 결말에 따라 용왕은 희화화의 대상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선왕으로 읽히기도 한다.

국왕과 나라가 동일시되던 당대 국왕의 죽음은 나라의 흥망을 좌우하는 위기일 수 있었다. 그런데도 국왕을 구하려는 위험을 감수하려 한 것은 자라밖에 없었다. 그 행동이 입신양명에 대한 욕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지라도 용왕으로 대변되는 나라를 위해 나선 자가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나라의 위신이 서지 않았음을 뜻한다. 행위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고 그 명분이 제대로 세워졌다면 국가의 위기 앞에 모두가 그렇게 등을 돌리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토별가>는 왕을 풍자의 대상으로 등장시키거나 용왕이 자라의 장례를 치러주는 등의 다양한 결말의 변이를 통해 잃어버린 명분 복구의 시도를 보여주었다.

클릭 한 번으로 손쉽게 다른 나라에 진입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 시대다. 국적은 대한민국이지만 주요 정체성의 축이 되는 것은 미국이 되기도 하고 일본이 되기도 하는 시대가 도래해 있다. 애국심이 명분이 되어 희생을 감수하면서라도 모두를 위한 선택을 하게 만들었던 마음이 사라진 시대, 우리는 주민등록증을 손에 쥔 채 마음의 뿌리를 내릴 나라를 찾아다니고 있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제도 속에 있음에도 한 개인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묶어줄 수 있는 강한 무엇이 소실되어 있기 때문이다.

삶을 쳐 내는 게 버거워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잃어가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충만한 의지를 제대로 발현시켜 줄 명분이 필요하다. 내 목소리가 여론을 만들어 낼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주체적으로 움직여 새 역사를 써 내려간 기억이 있는 우리는 소망하고 있다. 좋은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타당한 명분을 가지기를, 그리하여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나라를 위해 움직일 수 있게 하기를, 그것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새 나라를 세워나갈 원동력이 되기를 말이다.

2024년,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새로운 판을 본다. 판에 연단을 만들어 위엄을 세운 것이 아니라 정치를 직업으로 삼은 자와 그러하지 않은 자가 연단 없이 허울 없이 소통하며 살고 만들어갈 그 판을 말이다. 2024년 벽두, 노력이 헛되이 버려지지 않고 희망이 절망에 먹히지 않으며 자괴감이 자존감 위에 군림하지 않게 하는 살기 좋은 나라를 꿈꾸어 본다. 그리하여 위기 또는 기회가 닥쳤을 때 너도나도 나라를 위해 발 벗고 나서고자 하는 이들의 뜨거움으로 채워질 새로운 신화의 2024년을 반겨 맞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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