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소희 소설가
권소희 소설가

두 형제가 운영했던 프린팅 공장은 소토(Soto)에 있었다. 원단 세일을 했던 동생 제임스는 봉제공장을 오고 가며 물건들을 실어 날랐다. 색깔 감각이 있는 형 크리스는 멕시칸들과 손짓으로 소통하며 티셔츠에 염료를 찍어냈다. 공업고등학교를 나와서 그런지 기계를 다루는 솜씨도 능숙했다. 곱상한 외모를 지닌 제임스가 자바시장과 원단회사를 들락거리며 일감을 물어오고 손재주가 많은 크리스가 멕시칸 노동자와 잘 어울리니 딴 맘 먹지 않고 성실하게 몸을 놀리면 금방 사업체를 일으킬 것처럼 보였다.

건물을 들락거리는 쥐들의 흔적이 놓인 사무실에 들어설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점차로 무감각해져 가던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어 “영주권 스폰서를 해줄 수 없겠느냐?”고 청했다. 에어컨을 틀 수 없는 캘리포니아 더위로 공장 안은 찜통이었고 제임스는 이마의 흐른 땀을 닦아냈다. 수건에 글리더 가루가 묻었는지 그의 이마 달라붙은 조각으로 반짝거렸다.

사실 영주권 스폰서를 해준다고 해서 회사에 해가 되거나 불이익을 주는 일은 없다. 변호사가 준비해온 서류에 회사 대표로 서명만 하면 되고 팬 벨트에서 생산되는 물건처럼 시간만 버티면 되는 일이었다. 원칙적으로는 고용인을 원하는 회사가 변호사비용까지 책임져야 하지만 그건 규모를 제대로 갖춘 큰 회사에게나 해당 되는 일이다. 극소수지만 간혹 회사가 전적으로 도맡아 취업 이민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정상적인 절차로 스폰서를 해주는 한인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모든 부담은 내가 책임지겠다는 부탁에 제임스는 연신 수건으로 이마를 닦기만 했다. 미지근한 반응에 당황했으나 딱 잘라서 거절을 한 것도 아니라서 일말의 기대를 걸어보기로 하고 그 두 형제와 가족처럼 지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퇴근길이었다. 차가 밀려 30마일도 채 되지 않은 속도로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접촉 사고가 일어났다. 일단 상대방과 면허증, 보험증, 자동차 등록증 번호를 주고받고 헤어졌다. 그다음 날 출근해서 교통사고 전문변호사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크리스가 자신이 잘 아는 변호사가 있다며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게 되면 배상받을 돈을 미리 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이다. 교통사고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크리스가 시키는 대로 그가 아는 변호사에 사건을 의뢰했고 배상금 800달러를 먼저 받게 되었다. 물론 크리스를 통해 전달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내 차를 박은 상대방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차량 주인이 아니라서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무보험자와 사고가 났기 때문에 배상을 받을 수 없고 내 보험으로 내 차를 고쳐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면서 건네준 1000달러를 돌려달라는 것이다. 1000달러라니?

“나는 800달러밖에 받지 않았다”고 언성을 높였다. 알고 봤더니 크리스가 1000달러를 받았는데 나에게는 800달러만 준 것이었다. 사건이 별 탈 없이 진행됐으면 탄로 나지 않았을 일이다. 세상에 믿을 인간 없다더니 크리스가 슬쩍 200달러를 떼어먹은 것이다.

하루는 제임스가 나더러 날짜를 고쳐 달라고 사업자등록증을 내밀었다. 원본과 대조해도 식별하지 못할 정도로 뭐든 똑같이 그려내는 컴퓨터 기술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공문서위조는 연방법에 걸리게 되었는데도 두 형제는 철없이 내게 위조를 요구했다. 그들과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을 냈다.

말만 꺼내고 취업 이민 신청이 들어가지 않을 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썩은 밥을 먹을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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