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3월 24일 충북 옥천군에서 태어난 A씨는 1920년 2월께 옥천군 청서면에서 산림의 면재산권 지정을 막기 위해 군중을 모아 면장을 납치하고 군청에 항의할 것을 선동하다 붙잡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일제강점기에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한 것이다.

A씨는 1937년 6월 13일 사망했는데, 친손자 B씨가 2022년 A씨의 독립운동 행적을 찾아내 국가보훈부에 국가유공자 포상을 신청했다. 국가보훈부는 2022년 8월 15일 A씨에 대해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다. B씨는 이틀 뒤 독립유공자 등록 신청을 했고, A씨는 독립유공자(애국지사)로 등록됐다.

B씨는 보훈급여금 지급 대상자(독립유공자 선순위 유족)로 지정해 줄 것을 신청했는데, 대구지방보훈청장은 지난해 5월 9일 B씨 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A씨의 외손녀인 C씨를 보훈급여금 수급 선순위자로 우선 지정하면서 B씨에게는 보훈급여금 지급 대상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통지했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독립유공자가 사망한 경우 배우자, 자녀, 손자녀, 며느리 순으로 보상금을 받을 순위가 정해져 있다. 같은 순위자가 2명 이상이면 같은 순위 유족 간에 협의로 1명을 지정한 경우에는 지정된 사람이 우선하고,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이 우선하되 독립유공자를 주로 부양한 사람이 있는 경우에는 그 사람이 우선한다.

결정에 불복한 B씨는 ‘보훈급여금지급대상자결정 취소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할아버지에 대한 경제적 부조나 부양을 한 것을 아니지만 할아버지의 공적이 드러나도록 노력했고, 할아버지의 사후 산소관리와 시제, 종중재산 관리 등의 일을 도맡았기 때문에 자신이 주로 부양한 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C씨의 경우 결혼 이후 할아버지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삶을 살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B씨는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행적을 찾아 국가유공자 포상 신청을 한 데 이어 자신의 노력으로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행적 등의 지상파 TV 등에 방영돼 널리 알려졌다는 설명도 보탰다.

대구지법 행정단독 허이훈 판사는 B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B씨 덕분에 망인 A씨가 뒤늦게 독립유공자로 등록되고 행적이 TV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사실은 인정할 수 있지만, B씨가 할아버지 A씨를 부양했다고 볼 수 없는 데다 주로 부양했다고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허 판사는 “원고 B씨가 망인을 주로 부양한 사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는 이상 손자녀 중 나이가 많은 C씨를 보훈급여금 수급자로 정하고 원고가 지급 대상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대구지방보훈청의 처분은 적법하다”고 했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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