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국 영남대학교 회계세무학과 교수·대외협력처장
박종국 영남대학교 회계세무학과 교수·대외협력처장

신년 첫 칼럼을 ‘요강을 씻는 머슴’으로 시작하였다. 요강을 씻는 머슴과 국민의 대표자가 가져야 할 능력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적지 않은 독자께서 질문을 주셨다. 먼저 졸필을 읽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황송할 따름이다. 신년 첫 칼럼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두 번째 칼럼에서는 머슴의 능력과 자격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주인의 요강을 씻어 선생님이 된 머슴에게 요구된 능력은 주인의 뜻을 헤아려 요강을 씻는 정성이었다. 이 정성은 ‘아무도’ 할 수 없는 능력이 아니라 ‘아무나’ 할 수 있는 능력이다.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고 이르는 말’이라는 의미의 인칭대명사 ‘아무’는 뒤에 붙는 조사에 따라 긍정과 부정의 의미로 달라진다. ‘아무’ 뒤에 조사 ‘도’가 붙으면 부정의 의미로 사용되는 반면 ‘아무’ 뒤에 ‘나’가 붙으면 긍정으로 바뀌게 된다. 예를 들면 ‘아무도 할 수 없다’와 ‘아무나 할 수 있다’의 경우일 것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대표자에게 국민을 다스릴 수 있는 전능함을 요구한다면 ‘아무도’ 될 수 없을 것이지만, 그저 국민의 뜻을 헤아려 그 뜻을 대변할 수 있는 능력만을 요구한다면 ‘아무나’ 되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다가오는 4월 10일 우리는 우리의 대표자로 ‘아무나’를 뽑아도 되는가? 그 답은 민주주의의 태동인 고대 아테네 정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원전 5세기경(BC500-400)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태동되었다라고 우리는 배워왔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약 2,500년 전 아테네에는 어떠한 선진적인 민주주의제도가 있었을까?

최초의 민주주의는 이념이 아닌 체제의 변화에서 시작되었다. 아테네의 집권 정치세력이 스파르타 원정을 떠난 사이 급진세력들이 교회권한을 평의회와 시민법정으로 넘기면서 민주주의는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그 이후 아테네 시민들은 연 40여 차례 모두가 참여하는 이른바 ‘민회’를 개최하여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하였다. 이 민회를 구성하는 축이 ‘평의회’, ‘시민법정’, ‘집정관’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민들의 대표를 선발하는 방식은 고도로 민주화된 선거가 아니라 ‘추첨’이었다. 이러한 제도는 마케도니아의 침략으로 아테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날까지 지속되었다.

추첨을 통해 대표를 선출한다면 대표는 누가 될 수 있는가? 앞서 이야기 한 ‘아무나’가 대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나’가 갖추어야 할 능력은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 기쁘게 하는 능력이고, 이러한 능력은 우리나라 국민의 대부분은 갖추고 있기 때문에 ‘아무나’ 대표가 되어도 문제는 전혀 없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아테네에서도 그랬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하였는가? ‘아무도’ 될 수 없는 잣대로 대표자를 바라봤고, 결국 그들은 ‘아무나’가 가지고 있는 능력도 가지지 못한 채 마치 ‘아무도’ 가지지 못하는 능력을 갖춘 양 우리 위에 군림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지금까지 우리는 ‘아무나’ 될 수 있는 대표를 ‘아무도’ 될 수 없는 대표로 스스로 만들어왔던 것은 아닌지 4월 10일을 기점으로 되돌아봐야 할 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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