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식 법무법인 수안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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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환자 乙이 좌측 중대뇌동맥에 있는 거대뇌동맥류 파열로 뇌출혈이 발생하여 응급실로 내원, 甲병원 의료진은 乙에게 3차에 걸친 뇌 CT 촬영, 뇌혈관조영술, 뇌실외배액술 등을 시행한 다음, 출혈 추정 시점으로부터 약 7시간, 응급실 내원 시점으로부터 약 5시간이 지난 후 개두술로 혈종제거와 중대뇌동맥 폐색술을 시행하였으나 乙 사망.

판단: 내원 당시 乙 상태가 이미 뇌지주막하출혈 환자에 대한 대표적 평가 방법인 헌트 앤 헤스 등급(Hunt & Hess grade) 분류상 IV 등급이었던 것으로 보이고, 이 경우 의료진은 乙의 임상상태, 뇌동맥류 및 뇌출혈 특성, 수술 난이도 등을 고려하여 보존적 치료를 하다가 지연수술을 할 것인지, 조기수술을 할 것인지, 초조기수술을 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으므로, 甲 병원 의료진의 진료행위가 진료방법 선택에 관한 합리적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보아 의료과실이 없다고 판단(대법원 2012. 6. 14. 선고 2010다95635 판결).

의료과실의 기준에 대해서는 이전 글을 통해 말한 바와 같으며, 이 글에서는 의료과실 민사소송의 특유한 감정절차, 인과관계 입증, 설명의무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한다.

감정절차: 의료과실을 판단하는 민사소송 사건에서는 일반적인 민사소송 사건과는 달리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는 감정절차가 필수적이고, 재판부는 그 결과를 판단의 중요한 근거로 삼고 있다. 각 법원은 의료감정을 요청하는 의료기관의 pool을 정해두고, 그 pool 안에서 의료감정을 촉탁하는데, 예를 들어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경우 서울대학교병원, 경찰병원, 국립중앙의료원,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 등을 촉탁기관으로 한다. 다만 의료감정 촉탁에 대한 회신율이 높지 않고, 지연되는 경우가 많아 의료소송이 일반적인 민사소송에 비해 전반적으로 지체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인과관계 입증: 기본적으로는 의료소송에서도 손해를 야기한 행위와 손해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을 경우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는 것이므로, 이를 손해를 주장하는 쪽, 즉 환자가 입증하여야 한다. 그런데 의료과실 소송의 성격상 이를 환자가 입증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대법원은 이를 완화하고 있다. 대법원은 환자가 치료 도중 사망한 경우 ① 피해자 측에서 일련의 의료행위 과정에 있어서 저질러진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의료상의 과실 있는 행위를 입증하고 그 결과와 사이에 일련의 의료행위 외에 다른 원인이 개재될 수 없다는 점, 이를테면 환자에게 의료행위 이전에 그러한 결과의 원인이 될 만한 건강상의 결함이 없었다는 사정을 증명한 경우에 있어서는, ② 의료행위를 한 측이 그 결과가 의료상의 과실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원인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입증을 하지 아니하는 이상 과실을 인정하고 있다(대법원 1995. 2. 10. 선고 93다52402 판결)

설명의무: 진료계약상의 의무 내지 침습 등에 대한 승낙을 얻기 위한 전제로서, 당해 환자나 그 법정대리인에게 질병의 증상, 치료방법의 내용 및 필요성, 발생이 예상되는 위험 등에 관하여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을 설명하여 당해 환자가 그 필요성이나 위험성을 충분히 비교해 보고 그 의료행위를 받을 것인가의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할 의무이다. 의료행위와는 별개의 독립된 주의의무로서,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 기회 상실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인정하여 위자료 책임을 인정해 왔다. 이는 판례상 인정된 의무였으나, 의료법 제24조의2에 규정되어 의료법상의 의무가 되었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의무이므로, 환자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거나 응급환자인 경우, 그 설명절차로 인하여 수술 등이 지체되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하여지거나 심신상 중대한 장애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그 의무가 면제된다.

대법원은 의사(피고)가 환자(원고)를 초진할 당시 세포 암일 가능성을 인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수술할 때까지 그 확진을 위한 유일한 검사인 조직검사를 시행하지 아니하였고, 여러 차례 전원을 권유하면서도 그 가능성을 설명하지 않아 환자가 그 질병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여 전원하지 않은 사례에서, 환자가 의사로부터 절제술을 시행받은 1996. 3. 14.경에 세포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 이미 환자의 병소는 국소마취로 절제할 수 없을 정도로 심부 조직까지 광범위하게 침범한 상태로서 무릎 아래 절단술은 피할 수 없었다고 인정하고, 설명의무 위반을 부정하였다(대법원 2002. 6. 28. 선고 2001다81313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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