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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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씻는 소리
오이를 깎는 소리
수박을 베어 무는 소리
미닫이문이 드륵드륵 닫히는 소리

딱 하나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지고 갈까
앞으로 내가 듣지 못할 것
남도 듣지 말았으면 하는 것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면……

조용히 우는 소리
틀어놓은 텔레비전 위로
막막한 허공의 소리
손톱으로 마른 살갗을 긁는 소리
죽은 매미를 발로 밟는 소리

이것 중에 무엇이 좋을까
잠시 고민했다

이런 거 맞나요?
나는 물었고
대답은 없었다
누가 벌써 대답을 가져간 것일까
다 두고 갈 수는 없나요?
아주 조용했다
누가 벌써 가져간 게 확실했다

가질 수 있는 것을
가지지 않을 때의 기쁨

잠든 사람이 따라 하는
죽은 사람의 숨소리
죽은 다음에도 두피를 밀고 나오는 머리카락 소리
벌려놓은 가슴을 실로 여미는 소리

세상에서 소리를 하나…… 데리고 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할래?

[감상] 제69회 현대문학상 시 부문 수상작이다. 심사위원은 “인간을 초과하는 목소리”, “나와 타자, 삶과 죽음, 인간과 사물,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지만, 일상과 사회의 토대 위에 있어서 강한 현실감과 공감을 끌어낸다”라고 평했다. 시인은 자신의 시가 “작은 해골바가지”가 되길 바란다면서, “우리는 모두 우리가 알았던 사람들의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면서 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무엇이 다른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로 삶을 시작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로 생은 끝난다. “세상에서 소리를 하나 데리고 갈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시인 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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