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나교 드아트텍컴퍼니 대표·미술학 박사
방나교 드아트텍컴퍼니 대표·미술학 박사

원시 미술의 기원인 고대의 동굴벽화에는 실제 동물의 형상을 묘사한 사실적인 기호, 기하학 문양의 추상적인 기호와 같은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림 언어는 자체로 독립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사냥이 잘 되기를 기원하거나 생존을 위한 의식과 정보 전달의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다. 이러한 기호를 조합하여 그림부호 체계를 간소화하면서 초기적 문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선사시대 이래로 동굴이나 바위에 그려졌거나 새겨진 그림 언어는 문자 이전의 제작물이라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근거자료나 기호체계가 없어서 다양한 연구의 이견이 나오지만, 실제 동물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이든 기하학적 문양의 그림이든 간에 공동체간의 정보 전달과 소통을 위한 본질적인 의미는 맥을 같이 한다.

문자 발명 이전의 인류는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의사 표현 수단으로 신체 언어나 그림 언어를 이용했을 것이다. 사회적 학습이 이루어지기 전 연령대인 유아의 행동 유형을 살펴보면,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신체 언어인 울음, 표정, 몸짓 등으로 표현함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신체를 사용하여 오랫동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상호 의사 교환을 해 왔고, 같은 공동체 구성원끼리는 이러한 몸동작이 때로는 기호화된 말보다 효율적인 경우도 있다. 그림 언어는 신체 언어와 달리 시·공간성을 가져서 기록이 가능하고 수신자와 발신자 간 소통의 정확성을 높여 일관된 해석이 이루어지게 한다. 인류가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원활한 소통과 더욱 신속한 전달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그림 언어의 단점을 보완하고 구조화하는 작업을 통해 문자 체계가 점진적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울주 천전리 암각화( 대한민국의 국보 제147호)

다양한 그림 언어의 흔적은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지구촌 곳곳에서 발견되고 사회적 약속의 형태인 기호체계로 오늘날에도 지속해서 사용되고 있다. 울산시 소재 울주 천전리 각석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신라시대에 걸쳐 제작된 사실적인 동물 묘사, 기하학적인 추상 묘사의 그림 언어와 문자 등이 새겨져 있다. 또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신호, 안내 표지, 상품과 단체의 로고 등도 대표적인 그림 언어의 실례이다. 이러한 그림 언어가 다양한 문자 체계와 함께 현재까지도 존속해 온 데는 의미 있는 시사점이 있다. 굳이 그림 언어를 문자로 치환하지 않아도 그려진 사물의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히 우리가 경험을 통해 직접적인 감정과 행동 그리고 소통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원전 약 3500년 전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수메르인이 만든 인류의 최초 문자인 설형문자와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알파벳의 기원이 되는 이집트 문자, 중국 한자의 상형문자 역시 그 발명의 출발점은 모두 무성(無聲)신호인 그림 언어이다. 인류사에서 문자 사용 전후를 기준으로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분류 명기하는 것은 문자가 인류문명에 끼친 영향이 그만큼 지대하기 때문이다.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사용한 상징적인 문자인 그림 언어는 기록과 의사소통 그리고 정보 전달을 위한 매개체였다. 이 같은 그림 언어는 직관적인 이해 수준을 넘어 실제적인 대상의 본질적인 요소만을 보존한 간략화 과정을 거치게 되면서 인류의 최고 발명품인 문자 출현의 원형(原型)이자 문명의 진보를 이끈 추진체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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