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인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 연구교수
김영인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 연구교수

늘 그래 왔듯 시끄럽고 요란하다. 선거철만 되면 정당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이내 사라진다. 이번 제22대 총선을 앞두고도 정치권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난립한 신당들은 이름을 채 외우기도 전에 합당을 추진하고 있다. 납득하기 어려운 정당의 초고속 탄생과 이질적 결합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심정을 이 신생 정당들은 알기나 할까? 아마도 모를 것이다.

신당의 창당과 연대의 명분은 제법 훌륭하다. 무능하고 낡은 양당 기득권 정치를 타파하고, 국민을 위한 미래 지향적 정치개혁을 하겠다고 한다. 진영정치의 울타리를 넘어온 신당들이 힘을 합칠 때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종식시킬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당 내 불협화음의 중심에 있었던 정치인들이 갑자기 만나 대동단결을 외치는 모습은 자연스럽지 않다. 일반 유권자의 입장에서 볼 때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하다.

한국의 양당체제는 승자독식 구조를 고착화하고 정치의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점에서 그 폐해가 심각하다. 그리고 정치적 다원성과 비례성을 보장하는데 유리한 다당제의 필요성에도 공감한다. 그러나 총선이 100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치적 뿌리와 방향을 달리했던 사람들이 하나의 정당을 운운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정당은 국가 차원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형성된 정치결사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는 오랜 노력과 치열한 준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3지대 신당 통합과 관련된 문제의 핵심은 정치 이념(ideology)의 모호성에 있다. 정치 이념은 정치집단이 국가적 사무를 다룰 때 근간이 되는 사고방식이나 주의(-ism)를 일컫는다. 따라서 정당이 어떤 정치 이념을 가졌는가에 따라 정치적 쟁점 이슈에 대한 원인 진단과 해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보수주의를 기반으로 한 이준석계의 신당과 진보주의를 기반으로 한 나머지 신당들의 세력 규합은 권력 획득을 위한 정책연대는 당장 이룰 수 있겠지만, 정당 존립의 기본이 되는 정치 이념을 놓고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보수와 진보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난다. 보수는 전통과 관습을 존중하며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가운데 점진적인 변화를 모색한다. 그리고 경제적 측면에서는 사유 재산권을 옹호하여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통한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이와 달리, 진보는 인간 합리성에 대한 신뢰가 깊으며 기존 질서를 개혁하는 적극적인 변화를 추구한다. 경제적으로는 인간의 평등권을 중시함에 따라 국가가 시장이나 세금 정책에 깊이 개입하는 방식을 통한 분배를 선호한다.

이러한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신당들은 보수와 진보의 의미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듯하다. 신당을 실험하는 정치인들의 입에선 보수와 진보의 조합이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가 하면, 양당과 싸우려면 진보와 보수를 가리면 안 된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그들이 한때 몸담았던 정당에서 느꼈을 실망과 변화에 대한 의지는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그들이 대의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책임 있는 정당을 만들고 싶다면 먼저 선명한 정치 이념부터 갖추길 바란다.

정치는 보수와 진보의 끊임없는 대화다. 정치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가 두 축을 이루어 건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새가 양쪽 날개로 날아가고, 수레가 좌우 바퀴로 굴러가는 논리와도 같다. 3지대 신당들이 정치 이념에 대한 정립 없이 ‘헤쳐 모여식’ 통합만을 추구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불 보듯 뻔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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