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전례가 없는 8관왕 전설을 쓴 수영황제 마이클 펠프스(23.미국)가 2008 베이징올림픽 전반기를 휘어잡았다면 그 뒤는 '자메이카 특급'이 떼거리로 이끌어갈 태세다.

육상의 꽃으로 불리는 남녀 100m를 동반 제패하고 미국의 단거리 지배에 종지부를 찍게 한 자메이카 육상대표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항상 2인자에 머물렀던 이들이 '베이징의 별'로 떠오른 이유와 배경에 쏠린 시선은 뜨겁다 못해 홀랑 델 정도다.

자메이카는 이번 올림픽까지 46개의 메달을 땄는데 1개를 제외하곤 모두 육상 트랙과 필드에서 수확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100m 금메달리스트 린퍼드 크리스티(영국),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100m 챔프 도노번 베일리(캐나다)도 자메이카 출신이다.

나름의 전통을 지녀온 자메이카 육상을 관통하는 핵심어는 유전자, 참마, 자메이카공대(University of Technology, Jamaica)로 요약된다.

◇유전자

카리브해 북부에 자리 잡은 인구 280만명의 작은 나라 자메이카는 1600년대 중반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후 서인도제도 노예 무역의 중심지 노릇을 해왔다. 조상이 주로 서부 아프리카 흑인들로 유연성은 타고 났다.

글래스고대학과 서인도대학은 2년전 공동으로 자메이카가 단거리에서 왜 강한지를 알려주는 과학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결정적인 이유는 유전자였다.

200명 이상 자메이카 육상 선수들을 조사한 결과 이들에겐 액티넨 A라는 특이 유전자가 있다고 밝혀냈다. 근육 수축와 이완을 빨리 일으키는 유전자로 조사자 70% 이상이 이 유전자를 지니고 있었다.

운동생리학에서는 근육의 수축과 이완이 빠르면 빠를수록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9초69로 남자 100m 세계기록을 세운 우사인 볼트와 여자 100m에서 정상을 밟은 셸리 안 프레이저가 비교적 스타트가 늦었음에도 출발 10m이후부터 폭발적인 스퍼트를 낼 수 있던 배경이기도 하다.

연구진은 '호주 선수들의 경우 이 유전자가 30% 밖에 없었다'면서 선천적인 DNA를 타고난 자메이카 선수들은 잘 달릴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번에만 반짝 끝나는 게 아니라 전통적으로 단거리 강세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전망이기도 하다.

◇참마

볼트의 아버지는 최근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자메이카 특산물인 참마를 들었다.

참마는 녹말과 당분, 비타민이 많고 자양강장에 좋은 식물로 알려져 있다. 자메이카인들은 참마를 비롯한 뿌리식물을 즐겨 먹고 이런 식단이 육상선수들의 스피드를 배가시키는 데 효험이 있는 것으로 현지인들은 평가한다.

무, 당근, 감자, 고구마 등 뿌리식물에는 암세포를 죽이고 면역력을 키워주는 리그닌이라는 식이섬유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에티오피아 장거리스타들이 '테프'를 먹고 힘을 내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해발 3천m 고지에 자리 잡은 초목지 베코지에서 쉽게 구경할 수 있는 '테프'는 에티오피아에서만 나오는 곡물로 칼슘과 단백질, 철분 등 필수 영양소를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자메이카공대

보통 공과대학은 과학자와 기술자를 배출하지만 자메이카 공대는 세계적인 스프린터를 육성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학교 기반 자체가 육상학교에서 출발했다.

볼트를 비롯해 9초74로 종전 세계기록 보유자인 아사파 파월, 여자 100m에서 공동 은메달을 수상한 셰런 심슨 등이 이 대학 소속 또는 출신이다.

육상은 자메이카에서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지름길로 통한다.

마땅한 육상 엘리트 양성 기관이 없던 시절 고교시절 재능을 보인 단거리 선수들은 1960년대 조국을 떠나 장학금을 받고 미국 등 해외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미국 대학대표로 뛰다 이들은 아예 국적을 미국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런 사정을 딱하게 여긴 데니스 존슨이 미국 수준의 선진 스타일의 대학 프로그램을 자국에 도입했다. 그는 스프린터 출신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주립대학에서 유학을 마쳤다.

오랜 기간 영국 지배하에서 영국식 육상 시스템에 젖어 있던 선수들에게 그는 미국식 선진 기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육상 프로그램을 모태로 수도 킹스턴에 2년제 전문 대학을 세웠고 이는 현재 280여 선수들을 집중 육성하는 4년제 자메이카 공대로 성장했다.

이 대학은 경기력 향상팀, 육상 클럽 등을 운영해 유망주들을 일찍 발탁한 뒤 집중지도 후 각종 대회에 출전시킨다.

파월의 개인코치로 유명한 스티븐 프랜시스는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한 특이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1999년 '속도와 파워 극대화팀'(MVP)팀을 구성, 당장 슈퍼스타보다 잠재력을 갖췄지만 아직 전성기에 이르지 못한 선수들을 선별해 엄청나게 훈련시켰다.

프랜시스의 지도로 그저 그랬던 파월은 100m에서 9초대를 41차례나 찍는 거물로 성장했고 브리짓 포스터 힐튼은 2003년 파리, 2005년 헬싱키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허들 100m에서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프리카 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특이 유전자와 영양소로 자질을 더욱 키워주는 참마 등 뿌리식물, 과학적인 선수 육성법이 삼위일체가 돼 자메이카 단거리 육상은 미국을 앞질러 드디어 정상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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