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북구 덕수동 우리옷 갤러리 - 조정화 씨

"포항에서 전시회를 한 번도 못가져 아쉬웠습니다."

아이들 옷만들어 입히는 걸 좋아하다 어느새 침선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는 조정화 우리옷(복식) 대표 조정화씨.

그가 5개월간의 긴 실내인테리어 공사 기간을 거쳐 지난달 28일 포항시 북구 덕수동에 '조정화 우리옷 갤러리'를 개업했다. 전체 공간 40평에는 자신이 만든 '공주 활옷' 복원작품을 비롯, 궁중복식, 사대부가 복식 , 당의·조복 등이 총망라됐으며, 제작 기간만 10년 걸린 '8폭 병풍', 여자궁중복식, 당의, 색동굴레, 호건(남자) 등이 전시돼 있다.

전시회장이 마땅치 않아 그동안 포항에서 한번도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의 갤러리를 최대한 활용했다.

특히 복식사상 첫 제작된 복식 병풍.

이는 원삼 당의, 제복, 용포, 조복, 구군복 등 종류를 망라한 궁중·사대부가 실제 복식을 1/5로 축소한작품 37점으로 제작했다. 힘들여 제작한 이 작품은 2007년 한국주요무형문화재협회 이사장 상을 수상했다. 이후 제 27회 전통공예 명품전,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전수조교 이수자, 시·도 무형문화재, 명장 등이 참여하는 명실 상부한 우리나라 대표 전통공예 명품전에 출품, 희귀성으로 인해 단연 으뜸으로 꼽히면서 관심을 끈 작품으로 지난 해 여주 영릉에서 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에 장인들의 기예와 혼을 담은 아름다운 예술품이자 생활용품인 전통공예.

하늘이 내린 기능과 기술 속에 눈썰미와 덕을 쌓지 않으면 재현 불가능하며 민족의 정신 또한 담아낼 수 없다는 전통공예는 보는 이들에게 어머니의 품속같은 푸근함을 느끼게 한다.

조정화씨는 지난 94년, 지인의 소개로 고인이 된 무형문화재 침선장 89호 정정완선생으로부터 도포, 심의, 남자복식 등을 배우면서 처음 큰 옷을 배웠다고 한다. "복식에 이런 세계가 있는 줄 몰랐다" 는 그는 그때부터 10여년간 주 1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서울을 오르내렸다. 정정완선생 이후 서울시 무형문화재 11호 박광훈을 사사했다. 그리고 조씨는 성균관대 사회교육원 궁중 복식원을 2년 수료한 후 금년에 수료증을 받으면서 궁중복식 과정을 끝냈다.

지방이란 한계를 극복하고 제 28회 대한민국 전승 공예대전 큰 상 수상, (사)중요무형문화재 보존협회 이사장상을 수상한 조씨는 침선분야 에서 큰 솜씨를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포항여성문화회관에서 침선을 지도하다 현재는 포항교도소 여사(여자죄수)봉제공장에주 2회 나간다.

"몸은 비록 교도소에 있지만 선조들이 일구어놓은 찬란한 전통문화를 이어가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 씀씀이"가 아름다워 보람을 느낀다는 그의 전통 복식 갤러리는 포항에서는 유일한 전통 한복 학원이다. 생활한복을 만들기 위한 염색공간이 있고 여유롭게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예쁜 공간도 있어 그야말로 우리 옷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을 수 있다.

장롱에는 디자인이 생각나면 짬잠이 만들어 둔 옷으로 가득하다. 이 옷들은 궁중 복식과 접목돼 고급스럽다. 조정화만의 디자인 이 너무 예쁘고 화려하다. 그러나 조정화씨는 "이 옷들을 여태까지 시중에 낸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이제는 혼자만의 공간을 가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작업에 임할 수 있어 좋습니다." 제자를 양성하면서 자신의 작업장으로도 이용했던 건물 2층은 이제 제자들만의 공간으로 남겨 두었다.

"고급 바느질이 필요하면 주로 서울을 찾는 사람이 많은데, 정작 서울에서는 자신이 입지 않아도 보관하기 위해 주문하는 사람이 많다" 는 조정화씨.

2003년 12월 '제 28회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출품작 '제복' 으로 한국무형문화재 기능보존협회이사장상 수상, '조복' 입선 등 두 벌이 동시에 수상을 하면서 문화재청에 의상이 등록되는 영광을 안았다. 바느질 한 가지로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수상이란 큰 상을 받고도 지역에서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펼친 타 시도와는 대조를 이루었다.

특히 3년간 폐지됐던 대통령상이 부활된 뜻깊은 대전에서 모든 장인들이 이 대회를 목표로 매진하고 있는만큼 전승공예대전 수상은 조씨의 실력을 인정받는관문 이기도 했다.

그러나 조용한 성품 탓에 알려지는게 오히려 불편하다는 조씨는 "섬세한 우리의 전통복식을 알리는데 만족할 뿐"이라고 했다. 그 해 11월에는 '제 1회 여성발명대회'에서 '자'를 디자인 해 동상을 세 개나 수상했다. 바느질을 하면서 '자'의 불편했던 점을 보완했던 것이 또 다른 영예와 함께 특허청에 등록까지 됐다. 그러나 재정적인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제작을 못하고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2004년에는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 윤택영家에서 스승인 침선장 박광훈씨와 기술 전수 제자들과 처음으로 기증전을 가졌다.

전시 후 조정화씨가 선보인 조선시대 제복과 조복은 "전통적인 형태와기법이 매우 정교하고 깔끔하다" 는 평과 함께 영구보존됐다.

전통복식분야에서 이미 그 이름이 우뚝 선 조정화씨. 2008년 열린 '제32회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는 '답호'를 출품, 입선을 하는 등 많은 수상경력이 있기까지 그는 복에식출토 유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열성도 마다하지 않았다.

민족 고유의 미의식과 생활양식, 종교가 반영된 전통복식,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담아낸 결정체인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밑바탕인 전통 공예.

"골이 깊으면 산은 높다"는 말이있다. 국가와 함께 전통문화부흥운동을 펴나가야 할 시대, 밤잠을 설치며 용맹정진해 온 그의 작업은 인간이 진실해지고 아름다워지는 소통과 열림의 예술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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