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하(포항시의원·前 의장)

다시 또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꿈과 희망을 산산조각낸 미국발 신용위기로 IMF 때보다 더 혹독한 경제난에 허덕였던 시련과 좌절의 나날이었지만 2008년 한해는 크게는 국가차원으로 작게는 우리 포항에 있어서 역사적 의미가 유난히 많았던 한해가 아니었나 여겨진다.

국가적으로는 건국 60주년이라는 상징성의 획을 그은 해이자 고아 수출, 독재, 가난, 한국전쟁 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던 우리나라를 스포츠강국, 아름다운 나라, 친절한 민족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로 바꾼 88올림픽 20주년이기도 했다.

더불어 포항에도 귀신 잡는 해병대가 주둔한지 50주년이 되는 해이자 근대화를 견인했던 POSCO가 첫 삽을 들어 올린 지 40년이 됐고, 포항출신 이명박 대통령이 표방한 실용정부 출범의 원년이기도 한 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들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전국의 대표적 해맞이 명소로 자리 잡은 '대보 호미곶 등대'에 불이 켜진지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한세기 전인 1908년 12월 동해안의 랜드마크인 호미곶 등대가 건립되고 눈비가 오나 바람이 불어도 100년을 하루같이 변함없이 한줄기 빛을 밝혀 바다의 안전을 수호해온 호미곶 등대의 고마움에 새삼 가슴이 저며 올만큼 숙연해진다.

고대 알렉산드리아는 파로스섬과 헵타스타디온 이라고 불리던 1㎞ 정도의 제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곳의 동쪽 끝에 대낮은 물론 어두운 밤에도 도착되지 않는 선박들의 선원이 항구를 바라볼 수 있는 장치를 포함한 고대역사상 가장 큰 건축물 하나를 신축했다.

기원전 280년경에 세워진 이 건물이 세계 모든 등대의 원조격인 피로스 등대이고 세계등대의 역사는 여기에서 시작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후 조선후기까지 횃불, 봉화, 깃발 등을 이용해 선박항해의 지표로 삼았다고 전해지며, 항로 표지가 최초로 나타난 문헌은 충남 태안군 가의도 앞 해상에 세곡선박이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했다는 기록의 세종실록(1422)으로 알려져 있다.

근대식 등대가 도입된 시기는 1902년 3월 25만원의 예산으로 인천항 팔미도 등 10개소에 항로표지를 할 것임을 외교 문서로 고시한 이래 그 해 5월 인천항 팔미도, 소월미도 등대공사에 착수, 이듬해인 1903년 6월1일 팔미도 등대를 신설 점등한 것이 우리나라 항로표지의 효시가 됐다.

그 후 인천항의 부도, 울산항의 울기, 제주항의 우도, 여수항의 거문도 목포항의 칠발도 등에서 속속 등대 불을 밝히고 있다. 지금은 숫자상으로도 등대의 수가 2천300개를 넘어서고 있다. 어둠과 폭풍우로 방황하고 있을 때 한줄기 빛으로 뱃길을 밝히는 등대 이야기는 뭇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등대지기 아버지와 딸의 진한 사랑을 그린 '소녀 등대지기'나 가시고기의 신드롬을 탄생시킨 조창인의 '등대지기', 지난 97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바람의 전설'등은 모두가 등대를 소재로 한 아름답고 감동적인 영화나 소설이다.

지난 100년 동안 호미곶 등대가 비추었던 불빛은 단순한 불빛이 아니라 안전항해를 바라는 사랑의 기원이며 그 불빛 속에는 거룩한 희생정신이 스며 있고 또 우리 포항의 발전을 염원하는 기도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새해엔 영일만 개항과 더불어 포항항이 자유무역 지역으로 지정되는 등 21세기 환동해권 주역도시로 자리 매김할 것과 더불어 '호미곶 등대 점등 100주년'을 맞아 한 세기 동안 바다의 안전을 수호해온 등대의 중요성과 함께 '호미곶 등대 점등 100주년 기념식'을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포항 시민들에게 큰 자부심으로 다가올 의미 있는 행사인 만큼 가슴에 와 닿는 기획과 내실을 통해 포항이 해양시대를 리드해갈 명품도시임을 대내외에 선언하는 홍보의 장이 되기를 바라며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달래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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