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찬욱(영남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요즘 '미네르바'가 허위사실을 유포한 죄로 잡혀 논란이다. 한때 '경제대통령'이라 불리기도 하며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했던 인터넷 논객 또는 경제문제 기고자인 그가 공고 및 전문대 출신으로 직업이 없는 삼십대 남자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경제학의 '학'자도 모르는 그가 어쨌든 세계경제에 대해 예견하고 맞추었다는 데서 사람들을 당황하게 한 것 같다. 학력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어쩌면 용납할 수 없는 현상인 모양인데, 그가 '미네르바'가 맞다는 가정 하에 그는 나에게 18세기 계몽철학자 루소를 떠올리게 한다.

스위스 주네브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난 장 자끄 루소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고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지만 알콜중독인 아버지 역시 그가 어렸을 때 사라지고 만다. 그 후 주네브를 떠나게 되고 프랑스 알프스지방을 떠돌다 한 귀족부인 밑에 있게 되는데, 이 부인의 서고에 있는 책을 기반으로 독학을 하게 된다. 몇 년이 지난 후 그는 파리를 향해 떠나는데 걸식도 하고 하인노릇도 하며 당시 서구 지식세계의 수도에 입성하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악보를 베끼는 일을 하며 지식사회의 친구들을 얻는데 성공하게 되고 그때부터 문학에 몰두한다. 오페라를 손질하거나 희곡작품을 쓰기도 하고 '백과전서'에 음악 파트를 맡아 작성하기도 한다. '백과전서'의 편집자이자 당시 감옥에 투옥돼있던 친구 디드로를 만나러 가는 길에 구상한, '학문과 예술의 진보는 풍속을 부패시키는 데 기여한다'는 역설적인 논리가 디종아카데미 현상 논문에 입상함으로서 세인의 관심을 끌고 문단의 스타로 등장하게 된다. 이후 '인간불평등론'을 내며 단 두 걸음 만에 당시 최고의 철학자 볼테르를 따라잡는다. 그리고 '사회계약론', '에밀'과 같은 철학서들을 내놓으며 주목받는 작가가 되지만 권력화된 교회와 왕정의 박해를 피할 수는 없었고, 방랑과 떠돌이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고 자기가 믿는 종교의 신자들에게서조차 따돌림을 당하고, 결국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주범이 되었던 것이다.

그의 철학의 명제는 간단하다. 자연은 인간을 착하게 만들었는데 사회가 인간을 악하게 만들었다. 자연은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었는데 사회가 인간을 노예로 만들었다. 자연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었는데 사회가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이 이상은 실현될 수 없다. 다시 말해 그는 이론 속에 틀어박혀 절대적인 이상을 건설한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이상이 사람들의 처량한 현재를 개선하기에 충분한 진리와 힘을 갖고 있다는 그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어느 누구도 사회 문제를 뚜렷하게 제시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어떤 특권의 문제에 매달린 철학자들뿐이었던 데 비해, 사치, 부, 노동이 없는 향락, 소유 같은 것들이 진정한 특권, 아니 근본적인 특권이라고 외친 그였다. 그리고 세월은 그의 편이 되었다. 프랑스 대혁명은그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해주었던 것이다.

이 혁명아는 천재였고, 때문에 불행했다. 그는 교육을 받지 못했고 시장, 거리, 자연을 돌아다니기 바빴다. 그는 세련된 태도,신랄한 재치, 위선의 프랑스 상류사회의 철학자와 귀족들에게 둘러싸인 평민, 방랑의 습성을 가진 공화주의적이고 종교적인 평민이었다. 그는 지식사회조차에서도 이단아였으며 극도의 개인주의자였다.

나는 이런 루소를 떠올리며 '미네르바'가 사람들이 말했던 '미네르바'이기를 바란다. 또 이 '미네르바'가 한 명의 천재이기를 바라고, 또 그로 인해 학벌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려주기를 바란다. 비록 그가 지금은 범죄인일지 모르지만 체계화된 교육을 받은 후 큰 경제전문가로 재탄생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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