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홍(수필가)

우리나라 사람이 낯모르는 사람과의 만남에서 인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눈길도 주지 않으며 어쩌다 눈길이 마주쳐도 서로 피하게 된다. 낯모르는 이의 유심한 눈길은 반가움보다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단일 민족이라면서 너무 비정한 것이 아닐까.

구미의 선진제국처럼 처음 보는 사람과도 정답게 인사를 나눌 수는 없는 것일까. 엘리베이터 안에서, 좁은 인도에서, 모르는 사람과의 시선을 어색하게 피하면서 가끔씩 가져본 마음이었다.

어느 쪽이라도 먼저 마음을 열면 정다운 인사말이 꽃 피련만 그게 그리도 어려운 것이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심보인가 보다.

등산길에서는 그래도 저항 없이 인사를 나눈다. 자연 속에서의 만남이기에 순수한 교감이 이루어지는 탓일까. 공통의 목적을 수행한다는 동료애의 발동일까.

어느 지인의 이야기다. 좋은 일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매일 아침 등산길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였다. 애써 인사하기가 수월하진 않았지만 좋은 일 한다는 보람으로 매일 인사를 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며칠 지난 어느 날, 그 날은 "안녕 하세요"라는 그의 인사말이 무색하게 만나는 이마다 모두 얼굴을 돌려버리거나 시무룩한 표정으로 일축하는 것이었다. 한 두 사람도 아니고 모든 이가 인사를 받지 않기에 자존심이 상해 좋은 일 하기로 한 결심을 포기해버렸다. 후일에 곰곰이 기억해 보니 그 날 인사를 받지 않고 지나쳤던 사람이 세 사람이었고 세 번째 외면당하는 순간부터 먼저 인사하기를 포기해버렸다고 한다.

지인의 뇌리 속에 모든 사람 내지 많은 사람이라고 느꼈던, 명랑 사회 만들기에 일조해보겠다는 모처럼의 다짐을 뭉개어버린 사람 수가 정확하게 말하면 세 명이었던 것이다.

수 개념이 없는 아프리카 어느 종족은 '하나, 둘, 많다'라는 세 가지 숫자만을 사용한다고 하니 셋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위력은 엄청난 것이다.

모 명문 고등학교 동창회 자리에서 있은 덕담이다. 중앙 부처의 어느 주요 부서에 근무하는 요원이 전부 자기네 동문 선배라면서 웃고 즐기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세 명이 그 부서에 진출하였던 것이다. 주요 부서에 한 사람이라도 진출하면 우리 동문도 거기에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진출하면 많이 진출했고, 세 사람이면 그 부서에는 전부 우리 동문이 근무한다고 과장하게 된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고사성어가 있으니 세 사람이 짜면 호랑이라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호랑이가 거리에 나왔다는 거짓말도 사실처럼 될 수 있듯이 근거 없는 말도 여럿이 하면 곧이듣게 된다.

삼이라는 숫자는 넓고 깊고 신중함을 뜻하니 삼라만상, 삼위일체, 삼부인, 삼정승, 삼사, 삼심제, 삼고초려, 삼십삼인 등 인류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예수께서도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공자님도 심인행(三人行)이면 필유아사(必有我師)라는 가르침으로 세 사람의 깊은 의미를 함축하셨다.

세 사람의 이지러진 모습이 외래인에게 비쳤다면 그는 무엇이라고 말할까. 분명 어글리 코리아를 외쳤을 것이다.

세계가 경제 공황에 빠져 허덕이는 때, 내각, 국회, 지방 정부, 사회단체, 할 것 없이 반목과 질시로 이전투구하는 모습이 시민들의 실망을 가중시킨다. 우리는 지도자 복이 이다지도 없는 것일까.

우리 민족에게 많은 것을 주셨던 하느님께서 왜 당신의 뜻에 합당한 지도자의 파견에는 인색하실까.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혜성같이 나타나는 의인은 없을까.

여야 가릴 것 없이 단 세 명의 의인이 이 땅에 나타난다면 모든 지도자가 의인이라며 기쁨으로 단합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축복을 맞이하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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