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위원회가 개인질병정보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요구하면 공단이 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 '보험업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이유는 한 해에 2천억원이나 적발되는 보험사기를 막아 선량한 가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금융위원회가 받은 정보를 민영보험사들이 활용할 수 있는 여지도 매우 크다.

그렇다면, 건강보험공단이 갖고 있는 개인질병정보란 무엇인가? 공단은 국민건강보험을 운영하는 보험자로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공단에 진료비를 청구한 자료를 갖고 있다. 환자에 대한 방대한 질병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공단은 이 자료를 바탕으로 청구한 진료비가 적정한가, 의료비가 얼마나 증감했는가 등 국민의료를 위한 지표로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질병정보를 포함한 개인에 대한 모든 정보는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관한 사항이기 때문에 업무목적 외에는절대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으며, 정보유출을 방지를 위해 2중, 3중의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외부기관에서 재판이나 범죄수사를 위해 개인정보제공을 의뢰해 오는 경우에도 위원회를 통해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일부에서 민영의료보험과 관련하여 개인질병정보제공을 법제화 하려고 줄기차게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보험사의 이익을 극대화 하려는 것이다.

개인질병정보 확보는 사실상 보험업계의 오랜 숙원이다. 보험사기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이는 개인질병정보가 보험업계에 흘러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금융위원회의 보험업법 개정안을 보면, 모든 중증질환자에 대해서 개인질병정보의 세부자료를 요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중증질환자를 일단 보험사기자로 전제하고 있다. 이는 그야말로 인권을 무시하는 발상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험사기 조사를 목적으로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를 타 기관에 유출시키지 않으며, 수사기관이 보험사기 조사업무를 할 수 있는 제도가 이미 갖추어져 있다. 현재도 수사당국 등에서 보험사기 수사를 위해 정보제공을 의뢰하면 공단은 '공공기관의 정보제공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민영의료보험사의 이해관계 때문에 공단이 고유업무상 보유하고 있는 개인질병 정보를 제공하게 되면 민감한 개인의 질병이 노출되어 심각한 인격침해는 물론, 헌법에 명시된 개인 사생활의 보호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보험사와 가입자는 사적 계약관계인데, 여기에 일방의 요청으로 공단이 개입, 일방의 편의나 이익을 위해 공적 업무수행 자료인 개인질병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식이라면 은행이 채무자를 추심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공단에 요청하면 제공해야 된다는 논리도 성립된다.

2005년 재정경제부가 똑같은 법률안을 추진했을 때 국가인권위원회는 '공단의 보유정보가 건강보험급여라는 공공의 목적을 위해 집적된 사적 정보로 영리를 목적으로 한 민간보험회사에 정보제공 허용여부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침해 여부에 대한 엄격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보험회사에서 보험가입자의 진료정보제출을 의무적으로 요건화하게 될 경우 정보주체의 이익이 부당하게 침해될 수도 있기 때문에 민간보험회사의 공단진료정보 활용이 허용되어서는 아니 되며, 민영보험회사에 대한 공단 진료내역정보 활용 여부는 개인의 기본권에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민영보험회사의 공단 진료정보 활용을 허용하는 것은 보류되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모쪼록, 개인정보 공유라는 민영보험사의 이윤추구 활동에, 선량한 국민들의 인권이 침해되는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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