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李達, 조선 중기)

흰구름 속에 절이 있는데

중은 그 흰구름을 쓸지 않는다

손님이 와서 비로소 문을 여니

온 골짝의 솔꽃이 다 늙었다.

<감상>세속적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난 수도승은 구름 속의 자신을 그대로 둔다. 일상적인 흥망성쇠의 개념도 구름 속의 일상과 무관하여 허허롭다. 산골짝에 꽃이 피고 지며 계절이 오고 가는 시간까지 넘어서서 자유롭다. 손님이 와서 문을 열어보니, "온 골짝의 솔꽃이 다 늙었다"고 낮은 탄식을 하지만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구름 속과 세상의 경계를 이루는 문, 이 아름답고 고요한 문 하나를 늘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야겠다. (조신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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