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된 삼나무 우거진 백악산 등반 경탄
잔잔한 아소만 낚시에 입에 쩍쩍 붙는 회맛 일품
한국 관광객 비자면제…여름방학 여행 적지

토 분쟁의 한 빌미가 될 까봐 내면적으로 큰 부담을 안고 다급히 송신 차단을 취한게 아닌가 싶다. 대마도는 부산과는 50.5㎞ 떨어졌지만 일본 본토 규슈까지는 무려 147㎞나 떨어져 있다. 대마도 곳곳에 남아 있는 우리 조상들의 생활 흔적과 경상도 계림에 속해 있는 역사 기록에 근거하면 분명 우리 영토였음이 입증된다. 그런데 일본 영토로 돼 있는 것이 현실적으로 너무나 안타까웠다.

대마도는 섬 전체 88%가 산악지대이고 면적은 709㎢로 제주도 보다 1.5배 작다. 그러나 울릉도 보다는 10배 가량 크며 본섬 2개와 109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돼 있단다. 유인도는 5개이고 인구 4만5천여명중 2만여명이 이즈하라 주변에 살고 있으며 행정구역은 나가사키 현에 속해 있고 크게 상도(上島) 하도(下島)로 구분돼 있는 것으로 알게 됐다.

조선 세종때 1419년 왜구 약탈이 잦아 이종무 장군이 병선 227척에 1만 7천명의 대군을 이끌고 대마도를 정벌했다 한다. 또 1436년에는 대마도의 식량 사정이 어려워지자 도주인 소우 사다모리는 대마도를 아예 조선의 한 고을로 편입시켜 달라는 상소를 울리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조선은 대마도를 경상도에 예속시키고 도주를 태수로 봉했다는 그 생생한 기록들은 대마도가 우리 영토임이 분명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것이 한스럽게 느껴졌다.

대마도 대아호텔 전경

우리 일행은 대마도에 해운업과 관광 호텔업으로 진출한 포항의 향토기업 대아그룹(회장 황인찬)이 600-700년전부터 우리 조상들과 얽힌 대마도 역사를 많은 우리민족에게 일깨워 상기 시켜주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관광사업에 진출한데 대해 자부심이 느껴지고 고맙게 생각되기도 했다.

대아해운은 지난 1999년에 부산에서 대마도 간을 운항하는 정기 여객선을 취항 시켰다. 또 대아그룹은 관광호텔도 대마도에 건립해 한국 관광객들에게 저렴한 숙박비로 숙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부산에서 1시간 40분이 소요되는 히타카츠 항과 2시간 40분이 소요되는 이즈하라 항을 1주일에 두세차례 번갈아가며 왕복 12만원대에 여객선을 운행하고 있다.

향토 기업 대아그룹의 대마도 진출은 국가적으로 보면 애국한 길이된다. 대마도를 찾아 본 관광객들은 수백년 전에 우리 조상들이 남긴 역사의 생생한 흔적들을 확인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또 포항으로서는 지역 기업이 해외 까지 진출해 막대한 역외 자금을 지역에 유입시키는 외화 획득으로 침체된 지역 경제 활성화와 지역 발전에 기여하여 결국 지역 주민들에게 그 영향이 미쳐 혜택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즈하라(嚴原港)

대아 그룹은 그뿐 아니다. 인천에서 중국 천진, 평택에서 산동성 까지 2만5천t급 화물 여객선이 운항해 외화 획득과 국위 선양은 물론 후포와 묵호, 포항에서 울릉도간을 운항하는 여객선 등이 벌어 들이는 수입 모두가 고스란히 포항에 유입돼 명실공히 지역 향토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향토기업 대아 그룹의 배려로 대마도 탐방에 나선 취재 기자는 여객선을 타고 대한해협 물살을 시원스럽게 가르며 달리는 기분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쾌했다. 대마도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도착 이튿날 대아호텔에서 하룻 밤을 묵게 됐다.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이 우리의 이같은 광경을 지켜 봤다면 무어라고 말했을까?. 반가워만 했을까? 아니면 대마도를 우리 영토로 보존시키지 못한데 대해 죄스럽다고 말했을까? 우리 조상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대마도 하늘 아래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 봤다.

대마도는 울창한 원시림으로 덮혀 있었다. 잦은 산불로 잿더미가 된 헐벗은 우리의 허술한 산림정책과는 다르다는 점을 엿 볼수 있었다. 수십년전부터 계획조림으로 가꾼 쭉쭉 뻗은 삼나무 (전봇대로 사용하는 목재)숲 또한 장관이었다.

아유모도시 자연공원

우리 일행은 대마도를 대표하는 산 해발 513.3m에 달하는 백악산 등반에 올랐다. 울창한 숲 속으로 조성된 등산로에는 빽빽하게 들어선 쭉쭉 뻗은 삼나무는 볼수록 탐스러워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성공한 일본 산림정책이 정말 부러웠다. 삼나무 특유의 향기도 숲속에 가득했다. 평균 수십년에서 수백년된 삼나무는 지반이 바위층으로 척박한 데도 구부러짐 없이 싱싱하게 곧게 자라 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백악산 등산로는 하늘을 쉽게 볼수 없을 정도로 산림이 많이 우거져 있어 낮시간에도 어둑어둑할 정도였다. 산속에서 흐르는 계곡물에는 송사리떼가 놀았고, 우거진 숲사이로 걸어 약 2시간 가량 소요되는 등산코스는 건강에 좋다는 삼림욕장으로 안성 맞춤이었다.

일본은 1억5천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나무만 팔아도 3년이상 먹고 살아 갈수 있다는 통계 조사가 나왔다는 것이다. 계획 조림 산림정책이 얼마나 성공 했는가를 엿 볼수 있다. 이처럼 산림이 울창한 대마도에는 산고양이와 말, 고려꿩, 산양 등 일본 열도에서 볼수 없는 동물들도 서식하고 있단다. 웬만한 사찰에는 신라와 고려불상이 있고, 조선의 범종도 모셔져 있어 자칫 우리 나라로 착각할 때가 있단다. 쓰라린 민족사의 현장도 도처에 남아 있었다.

만제키 다리

일본의 볼모로 잡혀간 신라 왕자 미사흔을 탈출시키고 처형당한 박제상의 순국비와 “왜놈들이 주는 음식은 먹을수 없다” 고 버틴 면암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 조선 숙종때 조난당해 목숨을 잃은 조선역관사 108명을 기리는 역관사비, 정략결혼으로 대마도주 가문으로 출가한 고종황제의 딸 덕혜옹주의 결혼기념비 등 우리 조상들의 한과 혼이 담긴 흔적들이 도처에 남아 있었다.

특히 대마도에는 대마도역사민속자료관에 전시된 유물 중 조선왕실의 관직 임명장인 고신이 전시돼 있다. 이는 대마도가 조선에 정치적으로 예속돼 있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로 평가 받고 있다. 이를 받은 사람들은 수직왜인으로 불렀다. 고신은 한국출신 왜구로서 조선왕조의 스파이 역할을 하다가 공을 인정 받은 사람이나 중국인 등도 포함돼 있다고 현지인들이 설명하고 있으나 관광객들의 사진 촬영을 철저히 금지시켰다.

게다가 값이 비싸지 않은 대마도산 회맛은 입에 짝짝 붙을 정도로 일품이었다. 한국 관광객들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둘러싸여 호수처럼 잔잔한 아사우만을 찾아 낚시를 즐긴다. 지금은 유명한 낚시터지만 오랜기간 왜구의 소국이었던 천혜의 요새였다는 것이 가이드의 설명이다. 조선때 이종무 장군이 아사우만 일대에 한달간 머물며 왜구를 소탕한 곳이기도 하다. 우리 일행은 유람선을 타고 아사우만 일대를 유람하면서 선상내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점심으로 떼우면서 왜구 정벌에 나서 이곳에 머물고 있었을 이종무 장군상을 상상해 보는 시간도 가질수 있었다.

대마도를 연구한 한 전문가는“일본이 실효적으로 대마도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우리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대마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용이하지 못한 일”이라며 “역사를 더듬어 보면 우리 조상들이 대마도를 점령하고도 당시 척박한 땅이라고 방치해온 것이 결국 일본땅이 된 것이 아닌가하는 분석이 있는 만큼 우리에게 모든 책임이 있는 것 같다”고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은 교류 활성화로 대마도를 한국의 경제권과 문화권에 편입시키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라는 논리의 주장을 폈다. 대마도에는 우리 한국인이 주민증만 있으면 땅을 살수 있단다. 등기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땅값이 치솟아 곳에 따라 가격차가 크지만 외진 곳에도 평당 수십만원씩 한단다.

대마도는 일본 열도에서 가장 낙후된 섬중의 하나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제 비행장이 건설되고 골프장 등이 들어서는 등 급속히 관광객 유치를 위한 개발 붐이 일고 있다. 대마도를 찾는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비자를 면제하고 대마도 고교 국제교류과 학생들은 졸업학점(25점) 중 한국어 5학점을 필수 과목으로 이수하도록 규정할 만큼 한국 관광객 맞이에 대비를 하고 있다.

취재 기자는 짧은 대마도 탐방 일정이었으나 아주 중요한 몇가지 사실을 목격했다. 일본에서 가장 낙후됐다고 하지만 4만명이 사는 대마도 시내를 가로 질러 있는 생활 오폐수가 흐르는 하수도가 너무나 깨끗했다는 점이다. 또 우리와는 달리 도로가 너무나 비좁았으나 도로 확장을 위해 하수도를 무리하게 덮어 도로를 만들지 않았다.

하수가 흐르는 바닥의 모래도 워낙 정화조 기초 정수가 잘된 탓으로 바다 모래 색깔 같았으며, 쓰레기 하나 버려져 있지 않은 하수구에는 놀랍게도 송사리 떼가 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시내 중심가로 흐르는 하수구에는 마구버린 오폐수가 퇴적되면서 썩어 악취가 진동하고, 각종 쓰레기는 하수구를 뒤덮어 보기에도 역겨운 참담한 환경 파괴 경시 풍조와는 비교할 수없을 만큼 우위에 있었다.

일본의 개인 정화조 시설은 우리처럼 얼렁뚱당 설치 하는게 아니라 실제 허가 기준 용량 보다 오히려 건축주가 4~5배이상 더 크게 설치하고 매사에 친 환경적으로 임한다는 것이다.

또 4만 밖에 안되는 대마도 주민들은 한국 관광객들을 겨냥해 빵과 진주 목걸이 등 지역 특산품을 개발해 수입 올리기에 열중하고 있으며 대마도 고등학생들은 자발적으로 관광 코스와 호텔, 특산품 판매점, 식당을 소개하는 약도와 사진이 담긴 쓰시마 가이드북을 제작,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등 어린 학생들까지 국익을 위한 의식이 열려 있었다.

대아그룹 황대봉 명예회장은“대아호텔을 처음 대마도에 건립하기 위해 관할 시청을 찾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공원부지에 호텔을 건립하고 싶다고 요청하자 관계 기관에서 신속한 검토에 들어가 의회 승인까지 바로 받아 부지를 10년 무상으로 허가 해 주었다”고 말했다. 더욱이 공원부지를 가로질러 호텔부지로 조성한다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시에서 막대한 예산까지 투입해 옹벽과 화단을 조성해 호텔 건물을 세울수 있도록 배려한 것은 국익을 생각하는 일본국가의 안정된 정책과 투철한 민족성이 선진국으로 이끈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평가 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했다면 특정인에게 특혜를 주었다고 난리가 났겠지만 일본은 특별한 개발 제한 구역이 아닌 이상 관계 기관이 판단해 예산 지원은 물론 인·허가를 쉽게 해주는 관행이 정착돼 있다며 우리도 선진국으로 가려면 국익을 우선시하는 국민의식 전환과 열린 행정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황명예회장은 지적했다.

우리 일행은 2박3일간의 짧은 시간이었으나 뜻있는 대마도 탐방을 마치고 이즈하라 항에서 대아해운 소속 썬플라워Ⅱ호를 타고 한 많은 대마도를 멀리하고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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