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해 <안동대 국학부 교수>

지금 동아시아 문화의 주류는 한국문화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류 열풍이 중국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아는 물론 대중문화의 선두주자였던 일본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이라는 글에서 군사강국이나 경제강국보다 문화강국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름다운 세상과 인류의 평화를 보장하는 것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니라 문화의 힘이기 때문이다. 이제 김구 선생의 소원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듯하다.

중국은 우리와 사대관계에 있었던 유교문화권의 중심국가였지만, 지금은 우리 기술상품과 더불어 대중문화의 중요 수출국이다. 중국의 젊은이들이 한국 손전화와 대중문화에 열광하며 한류열풍의 진원지 구실을 한다. 방송 드라마와 대중가요가 선도했던 한류열풍은 문화콘텐츠도 석권하고 있다. 한국의 게임 프로그램이 중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제3의 한류열풍을 일으킨다.

아시아 대중문화의 선두주자였던 일본마저 한류열풍에서 비켜나지 못하고 있다. 드라마 ‘겨울연가’로 시작된 한류열풍이 영화와 음반으로까지 확대되었으며, ‘욘사마를’ 외치는 아줌마 부대들의 한국 관광도 크게 늘어났고 다투어 한국어를 배울 만큼 일본에서 한국어 강좌도 붐을 일으키고 있다.

한류를 단군이래 처음 나타난 현상으로 인식하는 것은 잘못이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배달민족이 차지하는 문화적 위상은 만만치 않았다. 고고학의 발전과 더불어 한반도의 선사문화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앞섰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한반도에서 고형의 구석기 유물들이 발굴되어 국제적 주목을 받고 세계 고고학지도를 바꾸는가 하면, 세계에서 가장 오랜 볍씨가 한국에서 발굴되어 국제학계에서 공인을 받았다.

전곡리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적에서 30만 년 전의 아슐리안 형태를 띤 전형적인 석기 4 점이 발굴되었는데, 150만년 전 아프리카 직립원인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던 구석기 유물과 같은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주먹도끼가 처음 발견되어 세계 고고학계의 정설을 바꾸어 놓았으며, 구석기 문화가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발달했다고 할 수 있다. 영암군 장천리 주거지 유적의 청동기도 BC 2,600년 경으로 추정되어 황하문명보다 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충북 청원군 소로리서 발견된 볍씨는 약 1만 5천년 전의 것으로서, 그동안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공인되었던 중국 후난(湖南)성 출토 볍씨보다도 약 3000년이나 앞선다.

중국의 고대 기록에 의하면, 우리 민족을 일컫는 동이족은 여러 모로 문화가 앞섰다. {황제내경(黃帝內經)}은 동이족이 살고 있는 “동방은 지구가 형성될 때 최초로 문화가 발생한 곳”이라 기록하였다. 고조선이 만주와 중국 중원, 몽골 지역까지 다스렸던 시대에도 한류가 동북아 일대를 휩쓸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삼국시대 이전까지 한국문화가 일본에 미친 영향 또한 새삼 거론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만하다. 한류가 일본 고대문화의 뿌리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 대회 때 한국의 붉은 악마들이 공동주최국인 일본의 울트라 닛뽄을 누르고 응원최강의 신기록을 세운 것도 예사 일이 아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고대 축제인 부여의 무천(舞天)과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등을 기록하면서, 남녀노소가 더불어 밤낮으로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춤추기를 며칠씩 쉬지 않고 계속했다고 한다. 핵심어휘(keyword)만 가려내면 남녀노소(男女老少), 주야무휴(晝夜無休), 군취가무(群聚歌舞), 연일음주가무(連日飮酒歌舞)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고대 중국인들이 우리 축제를 서술한 것이지만, 남녀노소가 한 동아리 되어 필승코리아를 외치고 깃발을 돌리며 춤추기를 밤낮 구분하지 않고 연일 계속한 붉은 악마들의 응원 양상을 묘사한 것이나 다름없다. 세계를 압도한 응원 열기는 우연한 것이 아니라 고대부터 전해오는 민족문화의 전통이 월드컵을 통해서 분출했던 것이다. 오랜 한류의 전통이 되살아난 현상이다. 그러므로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아 시베리아 대륙을 헤맬 것이 아니라 한류열풍의 전통을 민족문화 안에서 찾아내는 일이 더 긴요하다. 한류의 흐름을 지속시키는 데 이바지하는 문화적 유전자를 발견하는 것이 문화강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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