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성 규 <한동대학교 교수>

방학과 함께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서 인지 지역 인근의 해수욕장들이 붐빈다.

불볕이 쏟아지는 해변, 끝 없이 펼쳐진 검푸름, 넘실대는 파도. 여름바다는 역시 젊음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생명력과 역동성은 바로 젊음의 본질과 가까운 것 아닌가 싶다. 역동성과 밀접하게 연관된 생명과학의 한 분야는 아마도 면역학일 것 같다.

면역학은 병원미생물의 감염을 예방하고 감염성질병에 대항하는 면역작용에 대하여 연구하는 학문이다. 병원미생물이 침입하면 이에 대항하는 면역세포들을 신속하게 증가시켜 침입자를 제거하고, 상황이 종료되면 즉시로 세포 수를 줄여 최소한도로 유지한다. 상황에 대처하고 수습하는 과정이 대단히 효율적이고 역동적이다. 이 글에서는 면역세포의 일생을 살펴 생명의 법칙을 발견하고 이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이 생명원칙이 우리네 삶에 적용되는 한 지혜가 될 수 있다면 다행이라 하겠다. 하나, 전문분야를 일반인들에게 쉽게 전달해야 하는 어려움과 부담감이 크다. 우리 군인들이 육(해(공군으로 구분되어 있듯이,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도 체액성면역과 세포성면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체액성면역은 B임파구에서 만들어진 항체가 우리 몸의 혈액이나 분비물 등 체액에서 작용하므로, 군대의 해군이나 해병대와 비견될 수 있다.

세포성면역은 감염된 세포에 직접 접촉하여 식균작용을 하므로 육군에 해당되며, T임파구가 그 대표선수이다. 이 B세포와 T세포는 골수에 있는 같은 조상세포로부터 생겨난다. 백혈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골수를 이식하는 이유는 바로 이 골수조상세포로부터 모든 면역세포와 혈액세포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겨난 면역세포들은 골수나 가슴샘으로 옮겨가 성숙과정을 거치면서 훌륭한 전투요원으로 거듭난다.

군인들의 훈련소와 같은 이 과정에서 대부분은 죽고, 5% 미만의 생존세포들은 ‘나와 남을 구별’ 하여 ‘남만을 공격’하는 특성을 갖게 된다. 군대의 특수훈련과정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최정예 요원이라고나 할까.

이 과정을 통과한 신병 면역세포들은 혈관이나 림프관 열차를 타고 비장 또는 림프절이라는 면역기관으로 배치를 받는다. 그곳에서 적(바이러스나 세균)을 만나게 되면, 신병 세포는 활발하게 자기를 증식시켜 신속하게 전투력을 보강한다. 그리고 왕성하게 화합물질을 분비하여 인근의 다른 면역세포들을 활성화하고 감염된 곳으로 그들을 집결시켜 긴밀한 공조체제를 이룬다.

마치 적을 발견한 보초병이 상황을 보고하여 자신의 부대병력을 집결시키고 인근 부대와 합동으로 적을 협공토록 하는 것과 같다. 강력한 면역작용으로 인하여 침입한 병원미생물이 섬멸되면 감염이 사전에 차단되는 예방효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설사 감염이 이미 진행되었을지라도 질병이 치료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만약 이후에도 여전히 거대한 면역군단을 그대로 유지시킨다면, 이는 비경제적 일뿐만 아니라 면역 관련 질병이 생길 위험성도 있다.

면역세포들의 수를 대폭 줄여야 하는 이런 상황에서, 흥미롭게도 역전의 면역세포 용사들은 스스로 죽는 길을 택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이는 노쇠하거나 상황이 열악하여 일어나는 피동적 죽음이 아닌 자발적 죽음이기 때문에 ‘능동적 세포사멸’이라 한다. 거의 대부분의 세포는 죽고 아주 극소수만이 ‘기억세포’로 살아남아, 병원미생물의 또 다른 침입을 대비하는 예비군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게 된다. 적을 아직 만나보지 못한 신병 면역세포들은 기억세포 예비군들에 비하여 생존기간이 훨씬 짧다.

적의 침입이 없을 경우, 신병 세포들은 2~3주가 지나 ‘능동적 세포사멸’의 과정을 통해 모두 죽는다. 이들은 노쇠하여 죽는 것이 아니라, 젊고 싱싱한 세포들로 채우기 위해 자신의 자리를 비워주는 일종의 결단이다.

이 과정을 통하여 그 몸은 더욱 건강하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밝은 미래를 기대하면서, 건강하게 키운 새 세대에게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비워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표표히 사라져 가는 큰 어른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죽은 세포들의 구성성분은 대부분 새롭게 생겨나는 세포들의 건축자재로 다시 재활용된다. 죽었지만 결국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의 법칙을 무시하고 자신만 살겠다고 끊임 없이 자기를 증식하는 것이 바로 암세포인 것이다. 자기만을 위해 열심히 살았지만 결국 암 덩어리만 키우는 결과가 되었고, 그로 인해 종국에는 몸의 죽음과 함께 암세포 자신도 삶의 종말을 맞게 되는 것이다.

몸의 한 구석에서 일어나는 이 생명원리가 생명력 있는 공동체, 건강한 사회를 기대하는 우리네 삶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살고자 하는 자는 죽겠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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