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삼 우<기청산 식물원 원장>

삼복 한가운데인 7월의 마지막 날 이른 새벽, 어린 손주들과 해변으로 갔다.

코흘리개 어린 시절부터 마냥 좋아하던 동해로 차를 몰아가는데, 그런데 마음은 이전같이 핑크빛이 아니었다. 예년같이 피서객들의 무질서한 행락물결에 시달리고 찢겨져 있을 악취나는 해변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차량들로 그득한 해변 도로를 비집고 나가 한 수련관이 자리하는 비교적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웠다. 해변을 산책하기 위해 천막들이 빼곡히 자리 잡은 백사장을 건너가는데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더미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프로판가스 빈 통에다 얼음과자며 라면 빈봉지들, 찌그러진 깡통들에다 손수건, 팬티...온갖 잡스런 것들이 가장 비예술적인 모습들로 산지 사방에 널려져 있다. 대충 먹다 버린 수박덩이엔 파리들이 아침요기로 부산하다.

그 사이 사이를 분노를 삭이며 질러나가 잔잔한 파도가 찰삭데는 촉촉한 모래펄을 걷는다. 파도가 그려가는 굴곡선을 따라 산책을 하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하지만 파도가 스다듬는 선 그 밖으로는 팽개쳐진 온갖 쓰레기들로 하염없이 이어진다. 속히 벗어나고 싶어서 조금은 인적이 드물다 싶은 바위더미들 옹기종기한 쪽으로 옮겨 가기로 했다.

조선조 말기에 이르도록 멋갈나는 큰 정자가 있어 희대의 명사들이 때로 머물며 시 짓고 읊으며 호연지기를 배양하던, 그리고 이 고을의 백일장이 해마다 열려 문예를 진흥시키던 곳, 조경대(釣鯨臺)가 불쑥 솟구친 명소, 그 발등께를 돌아 태고적 용암 분출로 형성된 기암괴석들 정겨운 구석진 곳으로 갔다. 행여 거기는 좀 나을까 싶어서 애써 갔는데, 기대는 또 허물어 졌다. 어린 시절 소낙비 피하면서 오순도순 얘기꽃을 피우던 초가집 같은 그늘바위 까지도 쓰레기 소각으로 검게 거슬린 모습이다. 철조망 기둥 잔해들도 살벌하다. 으쓱진 곳마다 쓰레기더미로 악취를 풍긴다. 그토록 싱그럽게 깔려 있던 생기며 정기는 깡그리 지워 뭉개지고 도시 뒤안길의 시궁창 같은 누지로 변해가고 있었다.

여름 해변은 이 나라 중간층 다수 서민들의 잔치마당이요, 하기에 세속의 때를 가셔내고 새 氣(기)를 채우는 충전소여야 한다. 그런대 지금은 세뇌며 충전은 고사하고 지성인이라면 울화통이 치밀어서 분노로 귀가 할 수 밖에다. 지도층 인사들이 한눈팔고 있는 그 사이에 어린 백성들은 오물과 쓰레기로 뒤범벅이 되어가는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음이니, 큰 불행의 씨앗이다. 임란 때 임금을 비롯한 관료들이 왜병의 만행 앞에 뭇 백성들을 팽개쳐 놓았던 그 때의 참담함이 문득 연상된다. 질만 다를 뿐 그 폐해(弊害)는 더 클 수도 있음이다.

그나저나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급 인사들은 이러한 순간에도 깔끔한 골프장 같은 별난 곳에서 행복한 웃음으로 건강증진에 매진하느라 절대다수의 서민들이 지금 이렇게 쓰레기 더미 속에 퍼질고 있으리라는 것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 안다면 결코 이럴 수는 없음이다.

해변을 찾는 것은 무한으로 많은 물이며 맑고, 푸르고 넓게 신선한 기운들이 넘쳐나는 곳이기에, 그 기운을 흡수하러 가는 것일 거다. 지금은 그러한 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환락과 돈벌이, 그리고 지극한 이기주의자들의 생존터전으로만 급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데나 버리고 그리고 당연한 듯이 방관하는 신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마구 버리는 이기주의적인 피서객들에게 그 책임을 몽땅 전가할 수 는 없는 일, 분명 그 죄는 버리는 자와 버릴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자 반반일 것이다.

인무원려필유근우[人無遠慮면 必有近憂]라고, 먼 장래에 대한 염려가 없으면 뜻하지 않는 걱정이 쉬 닥치게 되는 법이라 경고했다. 이토록 바다며 산천을 더럽히는 썩은 정신이 이제 곧 어떤 재앙을 이 땅에 불러 올지 실로 두려운 것이다.

태고이래로 부터 영원할 정치의 최고 메뉴는 治山治水(치산치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살고 지구가 살며 내 후손이 웰빙 할 수 있음이다.

이거, 그렇게 어렵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걸 국민은 물론 우리의 지도자들이 깨우쳤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한 유별난 삼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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