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 호 <대구보건대학 금융재테크정보과 교수>

정치권에서 대형할인점의 영업시간과 입점을 제한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안은 대형할인점의 영업시간을 오후 8~10시까지로 제한하고, 대형할인점 진출도 인구 10만~15만 명당 1곳만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1996년 유통시장 개방 이후 현대화?대형화의 조류에 휩쓸려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중소상인과 지방상권의 처지에 대해 정치권이 뒤늦게나마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모두가 목도하는 바와 같이, 대형할인점은 인구 5만 명의 지방도시까지 파고들고 있다.

이런 결과로 대형유통업체의 판매액이 1998년 5.6%에서 2003년 15.3%로 급증하는 사이 전국 1,600여 재래시장은 빈가게 비율이 17.7%나 될 정도로 붕괴되고 있다.

또 지난 4월 대한상공회의소 보고서에 따르면, 1996년과 지난해의 유통 업태별 실적을 비교한 결과 대형할인점은 판매액이 779.6% 증가한 반면 슈퍼마켓과 구멍가게의 판매액은 각각 19.4%, 12.0% 감소했다.

특히 최근 들어 지방 중소도시로 할인점의 진출이 늘고 게다가 24시간 영업을 확대하면서 영세 중소상인은 갈수록 설자리를 잃고 있으며 이대로 가다가는 대형할인점 등쌀에 영세 중소유통업체들의 줄도산이 염려되고 있는 지경이며, 상당수 영세상인들은 생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놓여 있어 이는 지역 경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쳐 이미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중소 자영업자의 연간 매출이 평균 1억 원 정도인 반면 지역의 웬만한 할인점 1개 매출이 2000억 원에 육박한다니 결국 할인점 1개가 들어서면 단순 계산으로 2000개의 일자리가 없어진다(슈퍼마켓협동조합 측 주장)는 면에서나, 현재의 시장구조 하에서는 시장 지배자가 된 대형할인점들은 이익을 보는 반면 상당수 영세상인들이 몰락하는 것이 불보듯 뻔하며 그러한 영세상인들의 몰락은 본인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에게도 영향을 끼치는 점에서도 이는 심각한 사회불안정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대형할인점들이 지방에서 번 돈은 전부 서울로 가져감으로 인해 지역경제 공동화를 가속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지역경제의 선순환을 도모하고, 지역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시대적 요구라는 측면에서도 대형할인점에 대한 규제는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대형할인점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시장 원리를 거스르는 행위이며 불필요한 손실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러한 영세상인의 어려움은 과잉 난립한 자영업자 수와 경기침체에다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 등 구매패턴의 변화 탓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영업시간 규제가 자영업자들이 반길 만한 내용이지만,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보다는 소비자 편의와 시장 자율에 역행하는 데 따르는 문제점이 더 클 수도 있어 보인다.

우리 국민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대형할인점은 이미 도시기반시설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맞벌이 부부가 늘어난 요즘은 부부 또는 가족이 함께 일주일에 한 두 번 꼴로 할인점에 가서 생필품을 잔뜩 사놓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생활 패턴은 대형할인점이 일찍 문 닫는다고 동네가게로 발길을 돌리기보다는 할인점 폐점에 임박해 한꺼번에 몰려 극도의 혼잡을 빚을 수도 있다.

마치 과거에 백화점의 셔틀버스 운행을 못하게 해서 동네 슈퍼의 형편이 나아지기보다는 늘어난 자가용 이용으로 도로만 막혀 비용만 가외로 지출하는 등 소비자들의 불편만 가중된 경우가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이미 도시기반시설이 되어버린 대형할인점을 막으면서 지방도시의 인구 유출을 걱정하는 것도 앞뒤가 안 맞고, 장기 불황에 따른 구매력 감소라는 근본 요인은 도외시한 채 중소 유통업계의 살길을 대형할인점 규제에서 찾으려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영세 중소상인의 설자리를 대형할인점에 대한 규제에서 찾기보다는 장이나 동네의 슈퍼마켓과 구멍가게에 대한 지원에서 찾아내는 것이 더 합리적인 방법이 아닐까.

이를테면, 장이나 동네 가게에서 공통으로 쓰일 수 있는 상품권을 개발하고 동네 가게 납품용 물건에 대한 감세나 면세로 가격 경쟁력을 갖게 하면 어떨까. 아울러 장이나 동네의 슈퍼마켓과 구멍가게에서도 대형할인점 같이 환불이나 교환이 얼마든지 가능한 편리함을 가질 수 있도록 그들에 대한 경영과 마케팅 지원도 고려해 봄이 필요하다.

생존의 위기에 몰려있는 60만개가 넘는 영세 유통업체들의 활로를 열어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 때도 모든 유통채널이 골고루 발전함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발상의 기본은 다른 누군가를 눌러서 살아난다는 방식으로 이는 마치 아랫돌을 빼서 위를 받치는 식의 일시적 방편에 지나지 않음을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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