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성 규 <한동대학교 교수>

황우석 교수의 연구팀이 이번에는 복제 개(犬) ‘스너피’를 탄생시켰다.

지난 5월에는 맞춤형으로 환자의 줄기세포를 복제했다고 발표했었는데, 3개월이 지난 지금 복제 개를 탄생시키면서 또 하나의 개가를 이루었다.

세계 최초로 고양이 복제를 성공했던 미 텍사스 A&M대학교 마크 웨서신 박사조차도 수년간 시도했다가 포기했을 정도로 개의 복제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한다.

개는 사람과 생리학적으로 많이 비슷하기 때문에 심장병 등의 연구를 위한 실험동물로 많이 활용되어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노화 및 기타 질병의 연구용 맞춤형 개를 조작(생산할 수 있게 되어서, 이 분야의 연구 발전에 크게 공헌하리라 전망된다.

세계 초특급 과학저널에 연속해서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생명복제기술에 관한 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인정 받게 된 황 교수의 성공에 우선 힘찬 박수를 보낸다.

인간배아의 복제기술과 고난도의 동물복제기술을 확보함에 따라, 우리에게는 이제 인간을 복제할 수 있는 위험성이 더욱 높아진 셈이다.

아직 많은 사람들은 적어도 가까운 장래엔 이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다.

인간 복제에 대한 일반적인 정서가 부정적이고 생명윤리법이 이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렇게 속단할 일도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이제는 다른 과학자들도 황 교수의 생명복제기술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난자로부터 핵을 제거하고 대신에 피부세포의 핵으로 바꾸어 넣은 다음 전기화학적 충격을 주면 배아로 자라나는데, 이 체세포 복제배아를 자궁에 넣으면 핵을 제공한 사람과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한 복제인간이 탄생될 수 있는 것이다.

동물의 복제 성공률이 10∼15%이므로 20개의 난자가 확보되면 2∼3명의 복제 인간이 태어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공명심에 불타거나 윤리성이 부족한 과학자가 비밀리에 인간 복제를 시도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다른 선진국들은 이러한 생명윤리 의식 때문에 인간 배아복제 분야에 뛰어들기를 주저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체세포 복제기술을 개발하였고 우리나라와 함께 유일하게 체세포 복제를 법으로 인정하고 있는 영국조차도, 윤리적인 부담감 때문에 인간의 배아 복제에는 접근을 꺼리고 있었다.

이렇게 다른 나라들이 주춤거리고 있는 동안, 황 교수 연구팀은 용감(?)하게 영국의 체세포 복제기술을 이용하여 인간의 줄기세포를 추출해내는 성과를 이루었다.

절묘한 틈새 공략적 타이밍이라 할까. 과정이야 어떻든, 우리는 생명복제기술에 관한 한 최첨단에 있고, 따라서 관련된 생명윤리 문제 또한 엄연한 현실로 다가와 있다.

지난 봄과 이 여름 ‘황우석 신드롬‘이란 유행어가 생길 정도로 언론 매체들은 연일 황 교수의 연구 결과에 대한 특집기사를 냈다.

세계에 최고라며 내세울 만한 것이 변변치 않은 우리의 현실에서, 황 교수의 업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찬양 일변도의 분위기 속에 생명윤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너무나 미약하다.

세계는 지금 인간 배아복제 문제의 최전방에 있는 우리를 눈 부릅뜨고 주시하고 있는데, 생명윤리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줄기세포 연구가 기대의 대상이지만, 그렇다고 확실한 전망을 언급하기는 아직 이르다.

이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데 성공했을 뿐이기 때문에, 막 출발선을 떠났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줄기세포를 원하는 세포로 분화시키고 면역 거부반응을 없애며 암세포로 전환할 가능성을 차단해야 하는 등 앞으로 넘어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치병 치료에 대한 합리적인 기대를 훨씬 넘어서 환상을 심어주는 분위기는 우려해야 한다. 수많은 의학적(과학적 발견과 ‘기적의 물질’들이 한동안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키다가, 한 순간 싸늘하게 수그러들었던 역사적 사실들을 차분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연구자 스스로 인정했듯이,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이루어졌어야 할 인간 복제배아의 줄기세포 추출이 지나치게 서둘러 이루어진 점에 주목하면서 그 파장을 깊이 성찰할 때다. 이제는 흥분을 가라 앉히고, 우리의 배아 연구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인류사에 있어서 부끄럽고 불명예스러운 오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제는 배아 연구에 대한 기대와 함께 생명윤리에 관한 논의를 활발하게 진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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