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기 석 <대구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우리나라의 고질(痼疾)인 정치부재가 계속되고 있다. 야당은 차기 정권을 노리고 발목잡기에 여념이 없고, 여당은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이럴 때 대통령이라도 중심을 잡고 미래의 희망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할 텐데 그렇지도 못한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을 기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는 장점도 적지 않은 사람이다. 어깨 힘주기 식의 유치한 권위주의를 멀리하고, 재벌이나 여러 국가권력과의 유착을 통한 갈라먹기 식 권력유지도 지양하고, 자기만이 할 수 있다는 독선도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은 큰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요즘 T.V.에서 한창 인기를 끌고 이는 드라마 주인공인 이순신의 삶과 비교해 보면, 그 아쉬움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국정의 어려움이야 적지 않겠지만 이왕에 어려운 대통령의 자리에서 자기희생을 각오했다면 다음과 같은 점을 깨달아 볼 일이다.

첫째, 누가 뭐라고 해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즉 미래지향적 입지(立志)와 실천력이 필요한 것이다. 야당이 뭐라고 하던 일부 호사가가 지엽적인 문제를 가지고 흔들던 간에,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면 그 곳을 바라보고 갈 수 있어야 한다. 이순신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지 못하도록 바다를 지켜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그것만을 향해 나아갔다. 중상과 모략이 끊임없이 방해해도 전쟁에서 이겨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유일한 목표를 향한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우리나라를 어떠한 나라로 만들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고 그 길로 나아가는데 흔들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둘째, 줄기가 아닌 지엽적인 문제에 눈을 돌리거나 시비를 걸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언론과의 갈등이다. 몇몇 신문이 자신에 대해 무작정 반대하고 선동적인 언사로 국민을 호도한다 싶더라도 큰 마음으로 이들을 안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몇몇 신문 때문에 정책을 펼 수 없다는 듯이 언론에 시비를 걸고 맞대응을 하는 것은 한 나라의 정치지도자로서의 모습이 아니다. 이순신은 자신의 정책을 비판하는 부하, 자신의 계획에 딴지를 거는 정치인들에게 일일이 대꾸하지 않았다. 오로지 묵묵히 목표를 향해 걸음을 옮겼을 뿐이다.

셋째, 깊은 사색과 기도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지금도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고 있겠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과 구체적인 정책을 정하기 위해 자신과의 만남, 나아가 자신 안에 있는 하늘과의 만남이 필요하다. 외부로부터의 의견을 듣는 것도 두말할 것 없이 중요하지만, 최종 정책결정자로서의 묵상과 기도는 이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이 시간이 없이는 저 근저에서부터 마련되는 저력을 갖기 어렵다. 이순신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이 시간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하늘을 만났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아가야 할 방향과 취해야 할 구체적인 작전을 확신 있게 얻었을 것이다.

이제 반환점을 돌아 얼마 남지 않은 임기지만 깊은 묵상과 기도를 통해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 해결해야 할 과제, 취할 정책 등을 명확하게 확립하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를 기원한다. 이러한 자세는 대통령 뿐 아니라 여야 정치인, 나아가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일 것이다. 무언지 모르게 도모하고 협심하는 것이 아니라 파열되고 제각각 살길을 찾아 흩어져 가는 국민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내 탓이오’에 입각하여 이 글을 쓰는 나부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지만, 나라의 경제, 문화, 복리 모두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인들의 회오와 각성을 주문해 본다. 이 나라의 명운을 책임지고 있는 정치인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신의 한 몸을 희생하여 나라를 구하고 자신의 삶을 고양시킨 이순신의 숭고한 모습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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