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영 환 <경북통상 고문>

유가의 경전이나 유대인의 율법서 탈무드에 나타난 경구를 보면,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양육에 관한 것보다는 자식의 부모에 대한 효(孝)와 공경에 관한 것들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속담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고, 독일 격언중에도 “한 아버지는 열 아들을 기를 수 있으나, 열 아들이 한 아버지를 봉양키 어렵다”는 말이 전해진다.

과학과 경제의 눈부신 발달로 현대문명은 번성해졌으나, 사람들은 왜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는 걸까. 자식을 버리는 부모의 얘기는 이제 흔한 세상이 됐다. 어느 날 조간신문에서 비정한 어머니의 행위를 읽고, 내리사랑이라는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를 품어본 사람도 적지않을 것이다. 버림받은 아이가 자라서 부모에 대한 공경과 사랑을 생각할 수 있을까.

조선시대 아동의 인격함양을 위한 교양서 명심보감(明心寶鑑)중에는, “효도하고 순한 사람은 또한 효도하고 순한 아들을 낳되, 오역(五逆)한 자는 또한 오역한 아들을 낳는다. 믿지 못한다면, 저 처마 끝의 낙수(落水)를 보라. 방울방울 떨어져 내림이 어긋남이 없지 않은가”라는 구절이 있다. 충효사상 실천의 엄격한 법도와 형식을 주창한 주자학이 지배하던 시대에서도 자식의 품성은 부모로부터 이어받게 되니 먼저 부모가 되기 전 예비 부모로서의 인격수양을 쌓아야 된다는 점을 강조한 대목이다.

우리의 생명과 영혼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아 또다시 자손에 넘겨 주면서 인간 문명이 존속된다. 부모와 자식간 관계는 우리 인간사회의 기본단위임에 틀림없다. 효를 유가의 유물로 보는 사람일지라도 혈육지간이라든지 혈육의 정이라는 말에는 숙연해진다. 내리사랑보다는 치사랑이 어려워서인지 인격이 고매한 부모 밑에서도 불효하는 자식들은 많다. 부모로부터 생명을 이어받아 태어난 다음 부모의 양육으로 성장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부모에게 잘 해 왔다면 유가의 경전이나 기독교의 성경 혹은 불가의 불경까지도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를 그렇게 강조치는 않았을 것이다.

논어의 위정편(爲政)을 보면, “물질로서 부모를 봉양함을 효도라고 하나, 개나 말도 집에 두고 먹이는 법이니 공경하는 마음이 그에 따르지 않으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는 공자의 말씀이 있다. 불경에도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미워하지 않으며,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남을 얕보지 않는다”는 경구가 있다. 탈무드의 경구는 매우 실용주의적이어서 “아버지에게는 말대꾸를 해서는 안된다”는지, “아버지의 자리에 자식이 앉아서는 안된다”는 등 직설적으로 표현돼 있다.

놀라운 것은 로마시대 한 시인조차도 “ 어버이를 공경함은 으뜸가는 자연의 법칙”이라고 말했다. 발레리우스는 이렇게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를 해가 뜨고 지는 이치와도 같은 것으로 보고, 자연의 이치에 거스르는 인간의 악마적 심성에 대해 경고했다.

동서간 혈육지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은 본질상 차이가 없는 것이어서 인간의 악마적 심성에 대한 경고는 시대를 초월하여 퍼져왔다. 그것의 근저에는 이기심과 탐욕이 자리잡고 있다. 이기심과 탐욕은 부모에게도, 또한 자식에게도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게 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끝없는 불행과 파탄을 일으키는 폭약이다.

부모를 사랑하는 자는 남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불경의 말씀이 가슴에 닿는다. 이기심과 탐욕의 극복은 사랑하는 마음의 회복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이 이가 말한 “천하의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자기 몸을 주신 부모”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

실직으로 실의에 빠져 자살을 생각했던 한 청년이 어머니의 뜨거운 눈물을 보고 재기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자기가 성공할 사람으로 생각되지는 않으나, “내가 성공을 했다면 오직 천사와 같은 어머니의 덕”이라고 말한 링컨을 생각하면서, 어머니를 더 이상 슬프게 하는 자식이 되지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혈육지간은 인간사회의 기본단위이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공경과 사랑은 그 실행 법도와 형식이 어떻게 변천하든 사회를 화평케 하는 윤활유임에 틀림없다. 공경을 너머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할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는 효행은 쉬우나, 부모를 사랑하는 효행은 어렵다”는 장자의 말이 상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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