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숙수필가

유아교육을 가르치는 친구를 만났다.

상식에서 벗어난 주변 사람들을 씹는 것으로 대화가 시작된다. 동류의식을 느낄 즈음에 ‘인지조망능력’이라는 생소한 말이 나를 끌어 당긴다.

피아제의 이론에 따르면 2세에서 7세까지가 자아 중심적 사고의 발달단계라고 한다. 이때 에 타인을 배려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평생 습득할 수 없다고 한다. 자아 중심적이란 이기적인 것과 다른,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종의 장애다.

에릭슨의 또 다른 이론에 의하면 1세까지 신뢰감이나 불신감을 형성하고, 3세까지 자율성이나 수치심을, 5세까지는 주도성이나 죄책감이 형성된다고 한다. 11세까지 근면성이나 열등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초등학교 이전에 모든 인격이 형성된다는 말이다.

아니, 1세에 무얼 알겠는가. 신뢰감이나 불신이 자리를 잡는다니.

아기가 외출하려는 엄마를 보고 운다. 엄마는 다시 들어와서 천연덕스럽게 안 나가는 척하고 있다. 아기가 안심하고 할머니와 눈을 맞추는 동안에 엄마가 슬쩍 나간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아이의 마음에 불신감이 심어진단다.

잠시 울더라도, 알아듣지 못한다 해도, 아이가 보는 앞에서‘엄마 일하고 올게’하고 말하면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는 학생들한테 사귀는 사람의 유년을 보라고 한단다. 성장과정은 인격을 만드는 기초로 이 시기에 긍정적인 사고를 취했어야 만이 원만한 인격을 갖추게 된다고 한다. ‘내 사랑으로 그 불우한 환경의 상처를 치유해주리라’이런 이야기는 꿈같은 이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상대를 지금 상태로 수용할 수 있을 때만 선택하라고 이른단다.

때로는 남에 대한 배려를 모르는 사람들을 솔직하다고 헤아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솔직한 것이 싫다. 솔직함을 빙자한 그 폭력성이 싫다. 공자처럼 백중인격은 아니더라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줄줄 아는 몇 중 인격은 갖추고 있어야하지 않을까. 들끓은 속을 그대로 얼굴에 드러내도 좋은 것은 어쩌면 일곱 살이전까지만 허락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다 만나게 되는 소통 불가능한 사람에 대한 의문을 조금은 풀 수 있었다. 닿을 수 없는 그의 불우한 유년을 헤아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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