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대풍헌 전망대에 오르는 관광객 중 동의하는 분들에게 지문과 질문지를 드리고 견해를 좀 적어달라고 했다. 답지를 제출하는 분에겐 문화상품권도 드렸다.

정치인 테러에 관한 각 정당 관계자의 발언을 순서 없이 나열한 아랫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우리 사회가 증오와 혐오로 오염되고 있는 것 같아 개탄스럽다. 내전적 정쟁과 극단화가 이제 단순히 불통을 넘어 실질적인 폭력으로 치닫고 있다. 거듭되는 정치 폭력에 한국 정치가 병들고 있다. 범죄 피해, 테러의 피해는 진영이나 당의 문제가 아니다. 대립과 혐오는 폭력을 부르고, 폭력은 빠르게 모방되며 사회를 병들게 한다. 제3, 4의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 악순환을 끝낼 의무가 우선 정치에 있다. 정치가 더 이상 사회적 증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일이 없도록 정치권 전체가 힘을 모을 때다. 국회는 혐오 정치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문제1, 제시문에서 각 당(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이 한 말을 찾아내고, 그렇게 판단한 이유를 설명하시오. 문제2, 일이 있을 때마다 해결책을 내놓지만, 개선이 안 되는 이유를 적으시오. (각 문항 띄어쓰기 포함 100자 이내)

다양한 답이 나왔다. ‘그 나물에 그 밥인데, 뭘 기대하느냐?’, ‘이런 문제 자체가 짜증 난다.’ 등 지문만 읽고 문제는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아무렇게 써낸 답이 많았다. 진지하게 답한 분도 있어 그중 하나를 소개한다. 문제1, 구분 자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일이다. 여야 정치인 모두 정당은 달라도 당리당략, 사리사욕 우선주의에는 조금의 차이도 없으니, 말과 행동이 비슷할 수밖에 없다. 문제2, 모든 정치인은 원인과 대책을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않았고, 실천 안 해도 국민이 계속 뽑아주었기 때문이다. 이상은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다. 지문만 팩트고 질문과 답은 그냥 상상해 본 것이다.

혐오사회, 증오사회를 만드는 맨 앞에 정치인이 있다. 작금의 정치판을 바라보면 어느 쪽이나 품격과 품위와는 거리가 멀다. 차별화된 철학도 지혜도 없이 오만과 독선, 냉소와 독기가 가득한 말들만 오간다. 정치가 난장판이고 천박하니 다른 분야도 덩달아 막장으로 치닫는다. 우리 사회에는 대화와 타협, 배려와 양보보다는 근육질의 논리와 주장, 아우성이 상식과 순리를 압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일상화된 곳에서는 소수의견이 보편적 의견으로 비약되고, 비전문적 아마추어리즘이 전문적 프로페셔널리즘을 무력화하여 사회 모든 분야에서 품격과 품위, 질을 떨어뜨린다. 정치가 감성적인 언어로 군중의 분노와 증오를 부추겨 집단적 광기를 증폭시키며 각종 극단주의를 확대재생산 해서는 안 된다. 자기 반문과 반성 대신 관성적 사고와 안일한 행동이 지속될 때 개혁 욕구와 실천 의지는 사라진다.

혐오와 증오는 말에서 시작된다. 천박한 언어와 매너는 사람의 심성을 황폐하게 만들며 영혼을 병들게 한다. 미국의 국부 조지 워싱턴은 “비록 적이라도 남의 불행에 기뻐하지 마라. 아랫사람이 와서 말할 때도 일어나라. 저주와 모욕의 언사는 쓰지 마라. 남의 흉터를 빤히 보거나 그게 왜 생겼는지 묻지도 말라”라고 했다. 품위와 품격을 갖춰야 존경받을 수 있고 권위가 생겨난다. 여야는 팬덤과 측근을 청산하거나 합리적으로 통제해야 한다. 강성지지층만 바라보며 조직 안과 밖의 언로를 막고 막말을 쏟아내며 갈등과 증오, 적개심을 부추기면 창의적 영감은 사라지고 변화의 열정도 고갈된다. 정치가의 말엔 원칙의 나열보다는 구체적인 수단이 담겨 있어야 한다. 국민도 그들의 언행을 기억했다가 표로 심판하겠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정치란 말의 예술이다. 수준 높은 정치란 정치적 수사학의 진화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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