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순 경일대 특임교수·방통심의위 특별위원
임한순 경일대 특임교수·방통심의위 특별위원

1910년 10월 27일 밤. 한 노인이 러시아 야스나야 폴랴나 집을 나선다. 기차에 야윈 몸을 싣는다. 어둠에 잠긴 자작나무 숲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길이다.

대문호 톨스토이. 명성 뒤에 가려진 그의 삶은 비극이었다. 과도한 물질 소유는 죄악이라 생각한 그는 신발을 만들어 신었고 땔감과 건초를 직접 구했다. 하지만 아내는 물질욕이 강했고 사치를 좋아했다. 톨스토이의 판권 포기 움직임에 갈등이 폭발했다.

아내로부터의 탈출 시도였다. 끝내 성공한다. 열흘 뒤 그는 시골 기차역의 한 작은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82살. 유서를 남겼다. “내가 있는 곳에 아내가 와서는 안 된다.”

‘부인 리스크’가 총선 정국을 달구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부인 김혜경 씨가 결국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난 2021년 8월 민주당 국회의원 배우자 등과 식사한 뒤 식사비 등 10만여 원을 경기도 법인카드로 결제하게 한 혐의다. 이 대표는 민주당 대선경선 후보였다. 검찰은 150여 건의 법인 카드 사용내역을 수사 중이다. 집에 배달된 과일값 1000만 원도 포함됐다. 김 씨가 추가 기소되면 이 대표는 자신의 사법 리스크에다 부인 리스크까지 더해 큰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될 전망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대통령 전용기 이용 인도 타지마할 단독관광과 옷값 특검 요구도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함께 쌍특검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구에서는 몇 년 전 한 국회의원 부인이 김장나눔 행사에서 배추를 던지는 ‘갑질 소동’을 벌여 남편의 공천 탈락 빌미가 됐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인 각 당의 공천 심사에서도 후보 부인 리스크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내가 너희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다.” 톨스토이 부인이 죽으면서 한 뒤늦은 후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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