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외숙 소설가
김외숙 소설가

혹한을 맞은 최근, 길 가던 러시아 사람들 머리에 고드름이 떨어져 여러 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읽었다. 추리 소설에서나 있을 법하던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는, 시베리아 혹한의 영향도 있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너무 많은 경제적 부담을 안은 탓에, 백성이 혹독한 겨울을 잘 나도록 정부가 도울 수 없던 것이 큰 원인이라고 뉴스는 전했다. 그러니까 간접적이지만, 무심하게 그 지붕 아래로 지나간 사람들은 정부의 지나친 전쟁 비용 부담 탓에 억울하게 변을 당한 것이다. 전혀 죽을 이유가 없던, 그냥 길을 걷던 사람들이었다.

겨울이면 나이아가라 주변에서도 집 처마 끝에 길게 드리워진 고드름을 쉽게 볼 수 있다. 고향을 떠난 후 아파트 생활을 하느라 볼 일이 없었던 고드름을 이 나라에서는 겨울마다 보는 것이다. 소설 쓰는 일을 하지만 고드름을 볼 때마다 나는, 의문의 죽음의 비밀을 풀어가는 추리 소설 독자 같은 상상보다, 유년에 부른 동요를 먼저 흥얼거리는데 바로,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 고드름 따다가 발을 엮어서 각시방 영창에 달아 놓아요.’라는 가사의 동요다.

처마 아래의 고드름을 보며 그것을 발로 엮어 각시방 창에다 드리울 상상을 작사가는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동요 가사를 읊조릴 때마다 나는 그분의 상상력을 부러워하는데, 그러다 남의 집 처마를 눈여겨보니 집마다 고드름을 드리우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집은 정말 발처럼 수정 고드름을 촘촘히 드리우고 있고, 어떤 집은 숫제 고드름이 없었다. 눈은 분명 골고루 내려서 같은 두께로 지붕들을 덮고 있는데, 아무리 추리해도 고드름이 있고 없음의 이유를 나는 알아낼 수 없었다.

단열이 잘되지 않은 탓에 집안의 열이 새어나가 지붕의 눈을 녹게 하면서, 녹은 눈이 얼어 고드름이 되었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게 들어 알았다. 고드름은 작가의 상상 속에서나 수정이 되고 각시방 영창에 드리울 발이 될 수 있지, 현실에서는 건축과 단열의 관계에서 발생 된, 고쳐야 할 현상이었다. 그러니까, 노후로 인함이든 처음부터 부실 공사였든, 단열 처리가 완벽하지 않아 집안의 아까운 열이 새고 있음을 일깨워 주는 현상이 고드름인 셈이었다.

러시아 정부가 쓰고 있는 막대한 전쟁 비용도 집안을 따뜻이 해야 할 열이 빠져나가 고드름을 만드는 현상과 규모만 다를 뿐, 같은 맥락이었다. 러시아 정부가 백성의 삶을 소홀히 하고 바깥에서 전쟁하는 데 낭비한 탓이었다.

새어나가서 문제 만드는 것이 어디 열과 전쟁뿐일까? 지켜야 할 집 두고 수시로 바깥 기웃대는 마음이란 것도 있다. 그 마음의 뿌리가 집안에서 견고한지, 그래서 집안이 화기애애한지 수시로 살펴볼 일이다. 마음이 바깥을 향하면 처마가 아니라 집안에 고드름이 드리워지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을 것 같은, 현실이면서도 비현실적인 것만 같은 그 어이없던 죽음은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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