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옷을 벗겨라, 그러면 그가 치료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치료하지 않으면, 그를 죽여라!/ 그는 단지 의사일 뿐, 단지 의사일 뿐.// 기뻐하라, 너희 환자들이여, 의사가 너희들의 침대에 누웠다!”-프란츠 카프카 시집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p 51·민음사)

100년 전 죽은 작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 시의 일부다. 천재 작가로 숨어 살면서 부조리한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글로 쓴 작가가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을 그대로 시로 표현한 것 같다. 카프카가 지금의 대한민국 의사들에게 묻는다. “그대는 단지 의사일 뿐인가? 단지 의사일 뿐인가?” 카프카는 마침내 환자를 돌봐야 할 의사가 ‘침대에 드러누웠다’고 조롱한다.

의사들이 사표를 내고 길거리로 나섰다. 수십 년간 우리나라 최고 두뇌들이 모여든 의료계는 이제 국민 여론도, 정부의 정책도 안중에 없다. 21일 오후 10시 기준 국내 100개 수련병원(47곳 현장점검·53곳 서면 보고) 소속 전공의 74.4%, 9275명이 사직서를 냈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이다. 이들 100개 병원에 전체 전공의 1만3000여 명의 95%가 근무한다.

의료 현장에는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수술실 가동률이 절반 밑으로 떨어져 암이 전이돼 수술이 시급한 환자도 일정이 취소됐다. 서울대·세브란스·삼성 서울·서울 아산·서울 성모병원 등 이른바 ‘빅5’ 병원의 수술 30∼50%가 취소됐다. 환자와 가족들의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기다림이 이어지고 있다.

한 의료계 인사는 TV 토론에서 의대 증원의 지역인재전형 확대를 비판하며 “반에서 20~30등 하는 의사를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의대 진학 초등반이 있고, 지역인재전형에 대비해 벌써 수도권 중학생의 지방 유학이란 말이 나온다. 의대생 2000명이 증원돼도 의대 입학생은 상위 1% 학생일 가능성이 높다. 의대 증원해도 여전히 의대 가기는 어려울 것이고, 지역의사제로 성적이 떨어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지방에 있는 학생들을 싸잡아 ‘공부 못한다’고 하는 선민의식에 찬 발언이다.

국민은 사욕을 앞세우고, 비상한 두뇌의 선민의식을 가진 의사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솔선하는 사명감 있는 의사 선생님을 원한다. 의사들이여, 그렇게도 도태될까 두려운가. 의사들은 거리에서 돌아와 정부와 마음을 비우고 협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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