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나교 드아트텍컴퍼니 대표·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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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왕조의 역사를 가진 이집트는 구석기시대 이후부터 로마 시대에 이르는 긴 시간에 걸쳐 진화하고 변화된 찬란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아프리카 북동부의 거대한 사막 지역에 있는 이집트는 국토의 90% 이상이 불모지인 사막지대이지만, 비옥한 나일강 주변 지역 덕택에 고대 문명의 발상지가 될 수 있었다. 풍요를 상징하는 나일강은 주기적인 범람과 강의 수위에 따라 재앙이 될 수도 있는 양가적 성격을 띠고 있는 천연의 요새이다. 나일강에 의해 해마다 반복되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풍요, 죽음이란 자연의 순환 현상을 목도한 이집트인은 아마도 인간의 영생과 내세에 대한 희망을 키웠을 뿐 아니라, 천문, 지질, 토목, 기하학, 수학이 총망라된 측량술과 건축물의 발달을 견인했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미술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를 담은 기록화에 해당한다. 주로 왕족이나 귀족의 무덤에 남겨진 부조나 채색 벽화들을 살펴보면, 제작자의 창의성이 배제된 엄격한 규칙에 따라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인물이나 사물의 표현은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모습을 재현하므로 마치 그림에 입문한 어린아이의 작품처럼 원근법과 시선의 방향성을 무시하고 있다. 눈과 상체는 정면, 얼굴과 팔다리는 측면의 방향성을 띤 정면성의 원리(Law of Frontality)에 근거해 이집트 미술의 조각, 부조, 벽화가 제작되었다.

인류 최초의 종이인 파피루스에 그려진 ‘사자의 서’는 사후세계와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다. 영생불멸을 꿈꾼 이집트인들이 미라를 제작할 때 가장 중요시한 신체 장기는 뇌가 아니라 심장이라는데 시사하는 점이 많다. 다시 말해 뇌는 버리고 4대 장기(간·폐·위·창자)는 따로 용기에 보관하지만 유일하게 심장만 몸속에 남겨두었다 한다. ‘사자의 서’에 기록된 그림에서 보여주듯, 죽은 인간의 형량을 저울에 단 심장 무게로 죄의 경중을 가름하는 만큼 인간존재의 가치를 순수한 도덕성에 두고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사자의 서. 파피루스 채색화, 7x39.5cm, 런던대영박물관 소장

이집트의 상형문자인 히에르크리프는 신성한 문자로 불린다. ‘사자의 서’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전개되는 상형문자와 그림은 인간의 사후세계에 관한 내용을 담은 파노라마식 서사에 해당한다. 각 장면을 묘사한 그림은 마치 상형문자가 이야기의 내용을 서술하듯 그 내용을 단계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사후세계에 관한 상세한 안내서와 같은 ‘사자의 서’는 후세대에도 본보기가 되는 교훈과 주문을 담고 있고, 현세의 삶과 내세의 삶이 무관하지 않음을 지적하며 현세의 생활 모습을 돌아보고 도덕적 가치를 몸소 실천하도록 개도하는 고대 이집트인의 가치관과 내세관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이집트의 미술은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나 라스베이거스 룩소르 호텔, 피카소의 입체파, 타이포그래피 등 현재에도 회화나 건축, 기호학 같은 다양한 콘텐츠에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정면성의 원리에 의해 제작된 이집트 미술의 인물상은 다양한 목적을 향해 갈지자(之字로)걸음으로 걸어가는 현대인들에게 심장을 품은 상체와 눈은 부동(不動)의 정면을 직시하며 흔들림 없이 나아가도록 아득하게 먼 세대가 후세대에 던지는 불변의 주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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