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편작이 열이라도 이병을 어이하리” 송강의 가사 ‘사미인곡’의 끝 부분이다. 임금을 생각하는 자신의 마음의 병이 너무 깊어, 천하의 명의라는 편작 같은 의사가 열 명이 와도 고칠 수 없을 것이라고 원망 섞어 한탄한 구절이다.

편작은 약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에 살았던,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의로 알려진 인물. 후대에도 동양권에서는 화타와 더불어 최고의 명의, 신의(神醫)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편작심서’에 따르면 ‘황제태을신명론’을 전수하고 ‘오색 맥진’, ‘삼세 병원’ 등을 저술했으며, 후세에 순우의, 화타 등에게 전수되었다.

편작은 삼 형제의 막내로, 위의 두 형도 의사였다. 형들은 동생을 능가하는 엄청난 의술을 지녔지만, 편작만큼 알려지지 않았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황제가 편작에게 두 형의 의술이 어느 정도냐고 물었다, 맏형이 제일 으뜸이고, 그다음이 작은 형, 자신이 가장 못하다고 했다. 황제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어찌 형들의 이름이 더 알려지지 않고, 편작의 이름이 가장 널리 알려졌느냐?”

편작은 이렇게 답했다. “맏형님은 환자가 병을 앓기도 전에 표정과 음색으로 닥쳐올 큰 병을 미리 알고 치료하여 환자는 의사가 큰 병을 고쳐주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둘째 형님은 큰형님보다 못해도 발병 초기에 치료하여 그대로 두었으면 큰 병이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환자가 눈치채지 못합니다. 이 탓에 형님들은 가벼운 병이나 고치는 시시한 의사로 평가받아 그 이름이 고을 하나를 넘지 못하지만, 저는 이미 병이 크게 되어 중병을 앓는 환자들을 법석을 떨며 치료하니 제 명성만 널리 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편작의 겸손함을 보여주고 있지만, 예방과 조기 치료가 중요함을 나타내는 일화라 여겨진다. 의사도 등급이 있다고 한다. 첫눈에 병을 알아보는(看) 신의(神醫), 목소리만 듣고(聞) 병을 아는 명의(名醫), 증세를 물어보고(問) 병을 아는 평의(平醫), 진맥해보고(診) 병을 아는 의원(醫員)으로 나눈다고 한다. 편작 삼 형제는 모두 신의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뛰어난 의술이 편작을 우러러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의료행위에 담긴 인간을 귀히 여기고 아끼는 고귀한 정신이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나도 우리에게 크나큰 감동을 안겨준다고 본다. 인간을 위한 의술이 시작한 그 태초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이기적인 의료인들로 인해 분노와 슬픔을 느끼게 하는 의료사고가 빈번한 요즘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까지도 물질만능주의에 눈이 멀어 가는 현대사회다. 한 번쯤 인간을 사랑하고 아꼈던 편작의 위대한 정신을 배우려고 노력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다.

사랑을 받으면 시기와 질투가 따라오는 법이다. 편작이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구하려고 천하를 돌아다니며 의술을 펴다가 진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진나라 백성들이 모두 나와 열렬히 환영하며 병을 고쳐 달라고 간청한다. 이를 본 진나라 태의 이혜는 자신보다 더 뜨거운 환영을 받는 편작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자객을 보내 죽인다.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안에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는 등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국민이 효과적으로 의료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정책을 입안하는 정부나 국민을 병마로부터 구하고자 의술을 펴는 의료계가 목적이 같을 것인데 서로 버틴다. 이게 바로 밥그릇 병이다. 편작이 열이라도 이 병을 어이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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