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소희 소설가
권소희 소설가

‘인생은 줄서기’라는 말은 살다 보면 볼드체로 짙어진다. 호랑이에게 쫓기던 남매에게 하늘에서 내려진 동아줄은 전래동화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도 하늘에서 내리는 동아줄을 잡는 일이 생겨날 때도 있다.

이민변호사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실력 있는 변호사를 만난다는 건 쉽지 않다. 어떤 분야든 전문가라고 다 전문가가 아니다. 이민 신청을 도와준다는 이민변호사들의 화려한 광고 문구는 그럴듯해도 동식이네처럼 서류 신청이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면 진퇴양난이 되고 만다. 기회는 한 번뿐인데 그 변호사의 능력이 얼마나 출중한지 테스트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모임에서 알게 된 J변호사에게 남편과 함께 찾아갔다. 실력은 검증되지 않았으나 의심은 일단 접기로 했다. 모르는 변호사를 찾기보다는 그래도 몇 번 눈인사를 한 관계니 어련히 알아서 해줄까 싶어서 방문했다. 그런데 그 변호사는 3순위에 한의사로 이민 신청하는 카테고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에 갸우뚱했지만 반박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변호사고 우리는 일반이니까. 한의사라는 카테고리 대신에 말도 안 되는 ‘건강관리사’인가 하는 걸로 이민 신청을 접수하겠다고 해서 찝찝한 마음으로 변호사 사무실을 나왔다.

남편의 한의대 동문을 통해 소개받은 변호사는 다른 나라 변호사였다. 그가 ‘한의사가 2순위에 속한다’는 정보를 말해주었다고 했다. 미국에서 받는 침구사 면허는 석사 이상 학위를 가진 사람에게만 시험을 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기에 한의사 면허시험을 치렀다는 것 자체가 2순위에 속한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맞는 논리다. 남편의 한의대 동문들은 모두 그 변호사를 통해 영주권을 받았다.

3순위와 2순위 진행 과정은 천지 차이다. 2순위는 이민 인터뷰도 생략하고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기 때문에 영주권 나오기까지 1년도 채 안 걸렸다. 그 사실을 아는 한인 변호사는 없었다. J변호사도 한의사가 2순위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랬기에 생각해낸 게 ‘건강관리사’라는 업종이었다. 동양의학에 대한 편견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미국 내에서도 한의를 대체의학으로 선호하는 백인들이 많다. 한인 이민변호사가 한의사가 2순위라는 걸 모른다니 참으로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잡게 된 남편은 일과가 끝나기 무섭게 변호사 사무실로 달려갔다. 왜냐하면 변호사도 일이 많아 닦달하지 않으면 일을 진행하지 않는다. 남편은 속이 탔다. 신청서류를 한시라도 빨리 접수 시켜야 했다. 큰딸 아이가 대학교에 입학해야 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피자 한 판을 사 들고 변호사 책상에 붙어 앉아 서류를 검토했다. 급한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이다. 담당 변호사는 귀찮은 진상 고객이라고 여겼을 테지만 고등학교 졸업하고도 진학을 하지 못한 딸의 처지를 생각하면 변호사 앞에 무릎이라도 꿇어야 했다.

그린카드(Green Card)를 받게 됐다. 접수하고 1년 만이다. 예전에는 영주권 카드가 녹색이어서 그린카드로 통한다. 신분 해결이 된 기념으로 라스베가스로 첫 가족여행을 떠났다. 남들은 일 년에도 몇 번씩 오고 간다는 그곳을 미국에 온 지 10년이 넘도록 가질 못했다. 돈도 없었을뿐더러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는 영주권을 받자마자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다. 그리고 당당히 ‘영주권이 있노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면접을 보는 사장의 안색은 달가운 표정이 아니다. 난 그제야 내가 이민자의 비애를 알게 되었다. 영주권이 없다는 게 취업 결격사유가 아니라 그걸 약점을 삼아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으려는 꼼수였다는 것을. 쳇, 하늘 한 번 쳐다보고 툴툴 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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