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 논설주간
이동욱 논설주간

임신과 여성 권리 의제는 역사가 깊다. 대표적인 법의 제단이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로 지금까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로 대 웨이드(Roe v. Wade)로 이름 붙여진 이 판결은 미국 여성 권리 신장의 중대한 이정표 중의 하나로 평가한다.

제인 로(Jane Roe 법정 기록을 위해 사용한 가명)는 21살에 임신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키울 능력이 없었던 그녀는 낙태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불량배들로부터 윤간당했다고 경찰에 거짓 진술한다. 하지만 당시 ‘오직 산모 건강에 위협이 되는 경우만 낙태를 허용’하던 낙태법 때문에 의사는 수술 대신 주법에 대해 위헌소송을 제기하라며 변호사를 소개해 준다. 이후 그녀는 연방대법원으로부터 위헌 판결을 받아 낸다.

당시 연방대법관들은 찬성 7 반대 2로 낙태의 권리가 미국 헌법에 기초한 ‘사생활의 권리’에 포함되므로 이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판결했다. 낙태권 보장은 1992년 가족계획연맹 대 케이시 판결에서 재확인됐다. 그러나 49년 후인 2022년 미연방대법원이 앞의 두 판례를 번복, 낙태권에 대한 연방 차원의 헌법적 보호를 폐지했다. 이후 미국에서는 각 주법에 따라 자율적으로 낙태를 제한하고 있다.

프랑스가 4일 ‘낙태의 자유’를 세계에서 처음 헌법에 규정했다. 프랑스 상·하원은 헌법에 ‘여성이 자발적으로 인신을 중단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조건을 법으로 정한다’는 조항을 추가한 개헌안을 찬성 780표 대 반대 72표로 통과시켰다. 프랑스는 1975년 이미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했지만, 헌법에 명시된 자유로 보장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2019년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국회가 보완 입법을 하지 않아 헌재가 낙태 허용 상한선으로 제시한 임신 22주 이후에도 낙태가 이뤄지는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프랑스 사례를 계기로 낙태 관련 사회적 합의를 담은 법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이동욱 논설주간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논설주간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