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인류가 최초로 만든 창안은 무엇일까. 영국 고고학자 올리브는 길이라 단언한다. 먹거리를 구하고 사냥감을 뒤쫓고자 길부터 냈다는 것이다. 잉글랜드 북서부 산악지대 어느 바위엔 암각화가 새겨졌다. 신석기인이 채석장 가는 방향을 나타낸 표지. 그전엔 발자국 흔적이 그런 역할을 하였다.

고대 사회에서 길은 두 가지 상반된 의미를 품었다. 상호 소통과 타국 정복. 이웃 국가와 교류하거나 전쟁을 위한 군사적 용도로 쓰였다. 지구촌 유명한 교역로는 모피길과 실크로드. 남북을 연결하는 볼가강을 따라 형성된 모피길과 달리 실크로드는 유라시아를 동서로 잇는 육로다.

영국의 와트가 제작한 증기기관은 산업혁명과 교통 혁신을 추동한 기제. 저렴한 역학적 에너지를 생산했기 때문이다. 이를 철로에 올리면서 육상 수송비는 해상 운임 정도로 낮아졌다.

또한 선박에 설치한 증기기관 덕분에 바다를 통한 무역과 이주가 대폭 늘었다.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 정착한 대규모 이민자는 와트의 업적에 힘입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위대한 발명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 공로를 기리고자 전기에너지 양을 표시하는 단위(W)로 그의 이름을 쓴다.

한데 세상을 바꾼 증기기관은 지구온난화 주범이 된다. 기후학자 크뤼천은 지구 대기를 감싸는 오존층 파괴 과정을 설명해 노벨상을 받았다. 그는 석탄 연소로 작동한 증기기관 때문에 이산화탄소와 메탄 농도가 급증함을 입증했다.

인류세라 명명된 19세기 초엽부터 21세기 초엽까지 화석연료 사용과 삼림 파괴로 인한 대기 구성 변화는 가히 혁명적 상황. 이는 하키스틱 그래프로 명료히 드러난다. 영화 ‘설국열차’는 이런 문제를 다룬다. 지구온난화를 극복하고자 성층권에 살포한 약제가 잘못돼 한랭화를 초래하는 설정.

600만 유대인이 학살된 홀로코스트는 철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 평한다. 죽음의 수용소는 열차 진입이 가능한 구조로 지어졌다. 히틀러는 게토 유대인을 강제 이송하고자 특별 열차를 편성하고 철도직원 수십만 명을 투입했다고 전한다.

오늘날 그 길이로 소문난 철도가 운행된다.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 사이에 놓인 시베리아횡단철도는 세계 최장 거리를 자랑한다. 만약 이 철도가 개통된 후에 러일전쟁이 발발했다면 결과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중국 칭하이성 시닝에서 티베트 라싸까지 달리는 칭짱철도는 세계 최고 해발고도에 놓였다. 이는 서북부 낙후지역 개발과 함께 유사시 다목적 성격이 강하다. 미국 대륙횡단철도는 19세기 세계적 사건에 포함될 정도로 서부 개척에 영향을 미쳤다.

문명 비평가 토인비는 설파했다. 역사는 도전과 응전을 반복하면서 나아간다고. 20세기 최첨단 토목공사로 손꼽는 유로스타를 보면 그의 통찰은 진리임이 자명하다. 도버해협 지하를 관통하는 고속열차 건설에 장기간 논란이 있었다. 페리 선주와 해당 도시민 반발이 거셌다. 물론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양쪽 도시는 최대 수혜 지역이 됐다.

최근 영호남 가교인 ‘달빛철도특별법’이 통과됐다. 일부 반대자 폄훼를 돌파한 쾌거. 장래 효율성 예측은 쉽지 않으나 그 자체로 정치 사회 경제적 함의가 크다. 지방 균형 발전과 동서 화합이란 명제는 시대정신인 탓이다. 새로운 소망 목록이 생겼다. 달구벌 대구와 빛고을 광주를 질주하는 달빛철도 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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