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순 경일대 특임교수·방통심의위 특별위원
임한순 경일대 특임교수·방통심의위 특별위원

조선 말기인 1894년 7월 갑오개혁이 단행된다. 개화파는 군국기무처를 통해 근대국가의 틀을 갖추기 위한 사회개혁 정책들을 잇따라 발표한다. 정치, 경제, 법률, 사회 전 분야에 걸친 광범위한 개혁이었다. 양반과 상민의 신분 차별과 과거 제도 폐지, 조혼 금지, 공평 과세 등 210건에 달했다.

문제는 이 봇물 발표를 국민이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일 같이 개혁 정책들이 쏟아졌지만 국민은 귓등으로 듣고 흘렸다. 발표된 정책은 반드시 시행된다는 신뢰를 국민에게 심어 줄 필요가 있었다. 내각은 고심 끝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동대문 밖에 통나무를 쌓았다. 관리들이 통나무를 서대문까지 옮겨 주면 나무 하나에 한 냥씩 돈을 주겠다고 했다. 지게꾼뿐 아니라 행인들도 외면했다. 하릴없이 통나무를 옮기는데 돈을 준다는 걸 믿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게를 진 사람에게 실제 돈이 쥐어지자 너도나도 나섰다. 정부 정책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당들이 공약들을 쏟아 내고 있다.

정부도 대형 프로젝트들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여야가 공약한 사업들을 모으면 100조 원을 훌쩍 넘을 듯하다.

대구∼광주 달빛고속철도 건설은 경제성 의문에도 특별법으로 통과됐다. 군공항 이전과 새 공항 건설이 추진되는 곳도 많다. 또 고속도로와 철로 지하화 바람도 거세게 불고 있다. 경제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예타면제를 통해 추진하기 위해 정치권을 압박하는 사태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인 56조 원의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 올해도 6조 원 이상 결손이 예상된다. 총선 경쟁이 가열될수록 묻지마 공약이 난무할 것이다. 지게와 통나무를 수십 번 들이밀어도 국민을 믿게 만들기에 역부족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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