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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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계란 한 판 속에는 한판의 침묵을 삼킨 부리들, 적막한 부리들이 물고 있는
개나리 그늘 수십 평, 그늘 밑에서 심장을 데우는 씨앗의 안간힘, 안간힘으로
알을 깨고 나온 김이 오르는 머리통, 보드랍고 촉촉한 머리통 아래에 잡힌 눈
주름, 눈주름을 밀면 산초열매같이 반짝이는 까만 눈동자, 아직 어둠을 알아보
지 못하는 순진무구한 눈망울 따라가면 말랑말랑하게 뜸이 들고 있는 구수한
흙, 잘 익은 흙을 헤집고 싶은 발톱의 근질거림, 뻗대는 잔발들을 달래고 있는
알곡의 조바심, 모락모락, 조잘조잘, 비릿비릿한, 갓 태어난 무른 것들을 모르
는 척, 침묵부터 익힌 생달걀 한 판이 곤두서있다 생각을 가만히 굴리고 있는
서른 개의 정적, 즐거운 상상으로 움찔움찔 한판의 귀가 진저리를 치며

[감상] 요즘 계란찜을 연구 중이다. 딸이 계란찜을 좋아한다. 계란찜 레시피를 보고 다시마, 새우젓까지 투입, 다양한 계란찜을 만드는 중이다. 그깟 계란찜이 뭐라고. 그러다 계란 난각번호의 의미를 알게 됐다. 산란일, 사육 환경, 생산자 정보가 계란 껍데기에 찍힌다. 그중 맨 뒤 사육환경 번호가 중요하다. 4번은 A4용지 1장과 비슷한 배터리 게이지, 3번은 1㎡당 13마리의 닭을 사육하는 환경, 2번은 그나마(!) 닭들이 돌아다닐 수 있는 환경, 1번은 옛날 시골집처럼 자유롭게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알을 낳는 환경을 의미한다. 시인은 “날계란 한 판”을 바라보며 입체적인 생명의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지식보다 상상력이 중요하지만, ‘동물복지’의 지식과 실천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생명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생명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인 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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