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내가 돌이 되면 돌은 연꽃이 되고 연꽃은 호수가 되고, 내가 호수가 되면 호수는 연꽃이 되고 연꽃은 돌이 되고” 미당 서정주 시인이 인연설을 그려낸 ‘내가 돌이 되면’이라는 시다. 내가 돌이 되면, 돌은 연꽃이 되고, 연꽃은 호수가 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노자는 “운명은 우리를 가족으로 만들고 선택은 우리를 친구로 만든다” 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연 같은 뜻밖의 만남과 관계에 놀라곤 하지만 사실 어떤 만남도 우연인 것은 없다고 한다. 인연설은 우리의 만남이 지난 과거의 삶을 통해 맺어진 인연에서 비롯됨을 말해준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으나, 오백 겁의 인연이 있어야 비로소 옷깃을 스칠 수 있다고 하니, 그 숨은 사연들을 어찌 다 헤아리랴. 중요한 것은 인연으로 오늘을 사는 태도요, 인연을 가꾸는 자세다.

우주의 질서 속에서 인생(人生)은 만남이다. ‘너’와 ‘나’의 만남, 부모 자식의 만남, 부부간의 만남, 형제간의 만남, 친구와의 만남, 애인과 만남, 직장 동료의 만남, 인터넷상에서의 만남. 만남이 삶이요, 삶이 만남이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만남이 시작된다. 산다는 것이 곧 만남이고 새로운 만남은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다주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간다. 사람의 행복과 불행이 모든 만남을 통해서 결정된다. 행복과 건강에 관한 많은 연구에서 좋은 관계가 좋은 삶을 만들고, 좋은 관계가 우리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든다고 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만남을 통해 결정된다. 아름다운 만남이 행복의 바탕이 된다. 관계의 질이 삶의 질이 되는 것이다.

우연한 만남이든 숙명적인 만남이든 인생의 변화는 만남을 통해 시작되고, 만남을 통해 서로를 발견한다. 행복을 향한 아름다운 만남이 되도록 만들어 가야 한다. 귀중한 만남을 아름다운 만남으로 만들어야 하고, 아름다운 만남은 아름다운 인연으로 맺어가는 일이 소중하다.

소나무가 궁궐 같은 저택을 짓는 대목수를 만나면 고급 주택의 목재가 되지만 동네 목수를 만나면 오두막이나 축사를 짓는 데 쓰인다. 훌륭한 목수라도 목재가 시원치 않으면 좋은 집 짓기는 힘들다. 나무가 목수를 잘 만나야 하듯이 목수도 좋은 나무를 만나야 한다. 어울리는 만남을 통해서 서로를 잘 다루어야 한다. 인연도 서로 어울리도록 가꾸어야 한다.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한번 땅에 엎지른 물은 다시 물동이에 담을 수 없다. 태공망의 아내 마씨가 68세가 되던 해 가난한 살림살이는 돌보지 않고 낚시만 하는 태공망에게 실망하여 버리고 떠났다. 뒷날, 주 무왕을 도와 역성혁명을 성공시킨 태공망이 금의환향하자 자신을 다시 아내로 받아달라고 청하지만, 태공망이 거절한다. 처음에는 어울리는 만남이었지만 끝까지 잘 가꾸지 못해서 땅에 쏟아진 물이 되었다. 꽃송이처럼 화려할 때 좋아하고, 권력과 힘이 있을 때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고, 힘이 적어지면 등을 돌리는 약빠름은 좋은 인연을 엮을 수 없다. 만남과 헤어짐을 가벼이 해서는 안 된다.

갑진년 설을 쇤 후 정치판이 바쁘게 돌아간다. 제22대 총선 때문이다. 제3지대의 윤곽과 정치판의 이합집산이 분주하다. 튀는 사람들의 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公害처럼 삐거덕거린다. 향을 싼 종이에서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서 비린내가 난다. 이들의 움직임에는 비린내가 풍기니 어쩌면 좋을꼬?

지금 우리는, 진실한 만남, 소중한 만남, 아름다운 만남으로 청룡의 기를 받아 날아올라야 한다. 이상의 소설 ‘날개’처럼 날자, 날자, 날자, 다시 한번 날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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