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일 한동대학교 공간시스템공학부 교수
김주일 한동대학교 공간시스템공학부 교수

포항의 도심부로 이사한 지도 해가 바뀌면서 이제 일 년이 되어가고 있다. 지도를 펼쳐 사는 곳을 찍어보니 정말로 더도 덜도 아닌 포항의 정중앙이다. 외곽에 있는 아파트와 주상복합 건물에만 살다가 이제 도심부 주민이 된 것이다. 도심공동화, 즉 도심에 살던 사람들도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흐름에 개인적으로는 거스르는 선택을 했다고나 할까.

포항의 경우 외곽에 사는 것이 출근이나 쇼핑은 물론 서울을 오가기에도 훨씬 수월한 편이다. 하지만 도심부에서 살아보아야만 할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도시계획이라는 내 전공에서 오는 것이었다. 포항에서 처음으로 시민을 대상으로 했던 강연은 마침 도심 상권 살리기에 대한 것이었다. 또 최초로 참여한 지역 프로젝트는 도심 그린웨이 조성계획이었다. 최근에는 도심에 있는 마을의 재생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지역에서 근 십 년간 도심을 주제로 강연이나 방송, 세미나에서 발언한 사례는 수를 세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이쯤 되면 자기모순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도심활성화를 떠들고 다니는 지역 대학교수가 정작 자신은 신시가지에 살면서 도심부에는 발걸음도 안 들인다면? 이건 모순을 넘어 직업윤리(?) 차원까지도 가는 문제가 아닌가. 처음에는 사소하던 이런 부담은 점점 커져만 갔다. 결국 작년에 이삿짐의 삼분의 일을 버리면서 도심부 한가운데, 그리고 철길 숲 그린웨이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해 버린다.

그렇게 1년을 도심부 주민으로 살아온 소감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일단 자동차를 두고 생활할 수 있다는 변화가 중요하다. 믿기 어렵게도, 도심 상가나 식당을 가는 것도, 시립도서관이나 죽도시장을 들리는 것도 다 걸어서 가능해졌다. 조금 무리를 각오하면 마트를 가거나 바닷가를 들리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멀어 보이던 것들이 도심에 살아보니 걸어갈 수 있는 은근히 가까운 거리에 모여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외곽에 살 때 외출은 도어 투 도어, 곧 자동차 핸들 잡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제 도심에 살면서 문을 열고 나가는 것으로 변했다. 사실 정상으로 돌아온 셈이다.

가장 큰 기쁨은 큰 앞마당(?)을 얻었다는 것이다.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철길을 리모델링한 그린웨이가 지나가기 때문이다. 북쪽으로는 포항여고에서 남쪽으로는 포항공대를 지나 형산강까지도 연결된다. 길이가 7킬로미터나 되는 어마어마한 앞마당이다. 사실 이 그린웨이가 아니었으면 도심 생활은 훨씬 불편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녹색의 띠가 다행히 도심 생활의 종합솔루션(?)이 되어주고 있다. 산책과 운동, 쇼핑, 만남과 같은 일상생활의 대부분이 그린웨이를 중심으로 풀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과거 철도의 분위기가 남아 있어 한산한 길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이제 지역이 그린웨이에 맞추어 반응하기 시작했다. 카페나 식당들도 자주 보이고 오가는 사람도 제법 많아져 활기를 띠고 있다. 가족 단위로 산책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는 장소로도 쓰이면서 점점 생활공간으로 자리 잡는 느낌이다. 그린웨이는 일상을 떠난 모험의 길이 되기도 한다. 보통 도심부에서 조각공원, 불의 정원, 효자시장 정도를 다녀오면 운동으로서는 충분하다 하지만 때로 모험심이 차오르면 마라토너가 되어 형산강을 따라 경주시 경계까지 다녀올 수도 있다. 형산강 중류에 자리 잡은 역사문화공원에 도착해 산 위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다 보면 지역의 숨어 있던 한 뼘까지 찾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도심이 공동화되었다는 것은 사람도 장소도 변하면서 과거의 생활방식은 이미 사라졌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도시재생은 과거의 복구가 아닌 새로운 생활방식을 창조하는 작업에 가깝다. 정책과 지원금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지역 시민들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이다. 도심으로 들어오는 역선택(?)이 있어야 이런 재창조 작업도 수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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