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국 영남대학교 경영행정대학원장
박종국 영남대학교 경영행정대학원장

지난 몇 주 동안 언론을 통해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가 아마 ‘공천’일 것이다. 오늘은 그 공천의 의미에 대해 짚어보기로 한다. 대의(代議)민주국가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가 정당(政黨)이다. 정당은 선거를 통해 일반 대중의 정치참여를 조직화하여 의회민주주의를 이끌어내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즉, 의회정치가 민주정치를 체계화시키고, 의회는 정당을 통해 구체화된다는 점에서 정당은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G. Leibholz는 “20세기의 현대 민주국가는 국민주권의 원리에 입각하고 있으면서 정당국가적으로 조직되지 않을 수 없고 정당을 통해 19세기까지의 자유롭고 대의적·의회적인 민주정치가 20세기의 국민투표적 민주정치로 바뀌었다”라고 강조하였다. 국민투표적 민주정치로 바뀌는 과정에서 정당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역할이 공천이다. 계희열은 ‘현대민주주의와 공천’에서 정당의 내부질서 민주화를 구현하는 여러 방안 중에서 후보자 공천의 민주화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하였다. 즉, 정당의 공천이 민주화되지 못할 때 그 선거의 민주화를 기대할 수 없으며, 선거의 민주화 없이는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은 정당정치에서의 핵심은 각 정당들이 민주적 방법을 통하여 그들이 내세우는 정강정책을 가장 잘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정치인을 공천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공천된 정치인은 그 정당으로부터 정치인으로서의 정당성을 부여받게 된다. 이렇게 정당성을 부여받은 정치인은 선거를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게 되고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치인은 그 자체가 헌법기관이 되어 의회정치를 구현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하여 우리는 각 정당들의 공천과정에서 드러난 이전투구를 경험하였다. 특히 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소속 당으로부터 정당성을 부여받고 국회에 입성한 국회의원들이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였다고 해서 그 정당을 나와 상대정당에 입당하여 과거 소속 정당을 헐뜯고 있는 현실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심지어 수차례 선거에서 특정 정당의 공천을 받아 국민의 대표자를 역임한 정치인도 포함되어 있다. 공천을 받기 위한 당위성을 최선을 다해 입증하고 나아가 상대 정당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에 맞설 수 있는 가장 적임자임을 주장하여 공천을 받았을 터인데 이제 그 정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였다고 해서 과거 자신이 그 토록 공격했던 상대 정당으로 옮겨 가 내가 몸담았던 정당을 헐뜯는 것은 스스로가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는 꼴이 된다. 창과 방패를 팔던 초(楚)나라 무기 상인의 일화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 무기 상인이 시장에서 창과 방패를 팔았다. 상인은 창을 팔기 위해 목청을 높였다. ‘이 창은 세상의 그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천하일품의 예리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말을 믿고 이 창을 구입하세요’ 천하일품의 예리함을 가진 이 창은 불티나게 팔렸다. 시간이 지나고 상인은 이제 방패를 팔 차례가 되었다. ‘이 방패는 지상 최고의 견고함을 지녀 그 어떤 창도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그러자 앞서 창을 구입한 사람이 물었다. ‘그럼 일전에 내가 구입한 창으로 이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 거요?’ 상인은 말문이 막혀 헐레벌떡 도망가고 말았다. 후세 사람들은 이를 자기모순(自己矛盾), 자가당착(自家撞着), 또는 이율배반(二律背反)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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