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영 목포대학교 교양학부 조교수·고전문학 박사
강지영 목포대학교 교양학부 조교수·고전문학 박사

아내가 방탕한 남편을 혼내는 이야기를 담은 <이춘풍전>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나태하고 절제 없는 생활을 하던 이춘풍이라는 인물과 그의 아내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그린다. 노름에 색까지 밝히는 생활을 일삼던 춘풍은 어느 날 문득 아내가 모아둔 돈을 가지고 평양으로 장사를 떠나겠다는 선언을 한다.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평양행을 감행한 춘풍은 이후 추월이라는 기생에게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추월의 집에서 하인 생활을 하게 된다. 이 소문을 들은 춘풍의 처가 남장을 하여 추월의 집을 찾아가고 추월을 벌한 후 춘풍에게는 서울로 돌아가라고 명한다. 집으로 돌아온 후 아내는 그간 춘풍이 행한 일을 알지 못하는 듯 모르는 척하며 남편을 받아주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작품은 아내가 남장을 하여 사건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특이한 서사 구조를 가진 것으로 자주 언급된다. 당시 여성은 밖으로 드러나는 적극적인 행동을 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남장이라는 장치를 거치기는 하였으나 이 작품에서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아내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남편을 벌하기까지 하는 것이 나온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본다면 저토록 무능하고 철없는 남편을 개과천선 시키려는 춘풍 처의 행동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당대 여성의 지위를 생각해 보면 오늘날의 상식만으로 판단 내리기는 쉽지 않은 사정이 있었음은 짐작할 수 있다.

그 때문인지 춘풍의 처는 ‘지혜’라는 단어와 함께 자주 거론된다. 그런데 여색에 빠져 정신 차리지 못한 남편에게만 사용하기에는 그 지혜가 참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사 갈등은 없을 수 없겠으나 그 갈등이 쾌락에 탐닉하기 위해 신의를 저버리고 인간의 도리를 잊어가는 것에서 비롯되고, 그리하여 지혜가 쓸모없는 갈등을 위해 소진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이혼이 부끄러운 일이 아닌 게 되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결혼이 되었건 이혼이 되었건 그에 따른 책임을 개인의 선택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고 느끼게 되는 한편 그만큼 이혼이 많아졌다는 데 대한 경각심도 느끼게 된다. 결혼도 이혼도 선택과 책임 문제이기는 하겠으나 그것이 자신의 앞선 선언을 물리는 것이 되었을 경우 그것이 상처가 되지 않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함께 한 집에서 살을 부대끼며 산다는 것은 속을 속속들이 알아간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모르겠다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기도 하여 상대의 속내가 때로는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때로는 감사함으로 남겨지기도 한다. 춘풍의 처는 남편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 시대 여성들이 으레 그러하듯 그녀 또한 그 난폭한 성격을 무던히 견뎌내 주었다. 이야기는 춘풍이 위기에 처하고 그 일을 계기로 개과천선하게 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현실은 사실 그러하기 쉽지 않다.

가정은 부부가 기틀을 만들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자라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을 이루어 산다는 것은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신뢰를 쌓아간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부모는 부모의 역할을 다하고 자식들은 자식의 역할을 다하며 부부는 부부 사이의 예를 다하기 위함이 가정이라는 단체를 꾸리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 ‘다함’이 의미 있는 것이 되었다면 갈등은 풀어가야 하는 것이 되겠으나 그것이 나를 옥죄는 족쇄가 된다면 갈등은 끊어내야 하는 것이 될 것이다. 갈등이 일 때마다 무조건 참기만 하는 것도 때마다 각을 세워 싸우는 것도 정답이 될 수는 없을 터. 누군가는 춘풍의 처를 어리석다 할 것이고 누군가는 현명하다 할 것이다. 배우자와의 갈등 앞에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붙들 것인가 손 놓을 것인가, 결코 간단한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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