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소희 소설가
권소희 소설가

타국에 살면 한국 사람이라는 인식이 두꺼운 질감으로 도드라진다. 태극기를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자긍심이 출렁대는 감동은 감출 길이 없다. 5천 년 역사를 지닌 민족의 후손이라는 타이틀은 당당함을 넘어 우월감마저 안겨주어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이민자에게 불굴의 용기와 힘이 솟아나게 만든다. 그래서 더욱 대접받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나도 한국인의 후손이라고.

한국에서도, 미국 LA에서도 논란이 된 장성순이라는 인물이 있다. 밀정을 처단하던 장성순이 일본 경찰에 쫓기다 일본군 19사단에 귀순해서 귀순증을 받은 사실을 기록한 동아일보 기사가 알려졌다. 그 기사에는 장성순이 귀순증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사형을 언도 받게 되자 그 가족이 일본군 19사단에 찾아가 다시 보증서라는 것을 받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보증서의 효력 때문인지 장성순은 사형은 면하게 되었으나 10여 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현재 그 후손이 LA에 살고 있는데 당당하다. 그 건국훈장의 공적 심사가 옳고 그르냐를 따지기 전에 왜 그 후손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임을 내세우고 싶어 하는지 그 심리가 궁금해진다.

백인과 흑인들 틈에 끼여 미국 땅에 자리를 잡은 이민 1세들은 미국 시민으로 국적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한국 바라기다. 성공해도 이민자, 돈을 많이 벌어도 아시안에 지나지 않은 이민 1세들은 어딘가 모르게 위축되기 마련이다. 문화와 언어로 인해 자녀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노인층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의 사회적 문제는 미국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미국 시민권자로 살아가는 한인들은 한국에서 사각지대에 처한 노인 문제보다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

단체에 소속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 고립감에서 해방될 수 있고 인정욕구를 해소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LA에 크고 작은 단체가 있지만 특히 3·1운동이나 8·15 광복절 행사를 주관하는 단체는 역사라는 배경에 맞물려 그 위상이 높다. 가끔 총영사관 관저에 초청되는 특혜도 주어지니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뿌듯함은 타 단체와 분명하게 선을 긋게 만든다.

그런데 문제는 활동 범위다. 독립운동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에 꾸역꾸역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상은 껍데기다.

이민자에게 모국은 개개인에 따라 스펙트럼처럼 다양하게 투영된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의 숙명은 인생이 무엇이냐는 질문 말고 또 다른 화두로 남겨진다. 명료한 답이 있다면 뿌리 교육을 강조하는 한글 익히기가 전부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여전히 이민자의 자녀들에겐 혼란만 줄 뿐이다. 모국에 대한 그리움은 그 땅에서 겪은 모든 경험에서 비롯되기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그 문화를 배워야 한다면 2세들의 입장에서는 이 또한 받아들이기가 녹록지 않은 일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어렴풋이 집에서 쓰는 언어와 학교에서 쓰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을 자연스레 터득하고 어렴풋이 자신들의 외모가 백인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가며 미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에서 미국인의 문화 속에서 성장한다.

부모라고 해서 문화충격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부모라는 권위와 체면을 지키고 싶지만, 반쪽짜리 위엄이다. 이미 자녀들에게 무시당했거나 그럴 소지를 안고 있는 이민 1세의 내적 자존감을 채워주는 데 뿌리 교육만큼 적당한 명분은 없다. 적어도 독립운동 후손이라는 타이틀은 감투를 좋아하는 올드 타이머들에게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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